피아니스트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어떤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곡이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그 곡들을 결코 다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악기가 대량생산된 덕분에, 많은 이에게 큰 사랑을 받은 덕분에 생긴 일이겠다. 가끔은 그런 맥락에서 다른 서양 악기 연주자가 피아니스트를 몹시 부러워하며, 자기 악기의 레퍼토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면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본 것 같다. “우리는 옛날 레퍼토리는 거의 없고, 현대에 와서야 좀 생겼어…”라거나, “바로크 때는 인기 많았어서 그때 곡은 많았는데 그 이후로는…” “좋은 곡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등등.
한 악기가 그 진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악기를 아주 잘 다루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 악기의 매력을 빛나게 해줄 곡도 필요하고, 이 악기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하는 개량의 손길도 필요하다. 물론, 연주자와 작곡가와 악기 제작자가 명확히 분리되던 옛 세계관에서는 그랬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둔 악기인 피아노는 여기에 어쩌면 후원자의 존재까지 더해졌을 수도 있다. 피아노의 발명가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바로 그 메디치가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된 이래로 쭉 그곳에서 악기를 고치고, 만들고, 관리하며 살았다. 그 악기가 가진 가능성 자체도 워낙 뛰어났겠지만, 그 악기를 둘러싼 여러 운 좋은 상황들도 결코 지나칠 수는 없겠다.
그렇다면 이제 막 만들어진 악기들에게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사실 나는 서너 개의 악기가 만들어지는 과정만 근 2년 사이에 가까스로 몇 번 목격했을 뿐, 그 새로운 악기가 나름의 생애주기를 거치며 자라나는 과정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 악기의 음향과 작동방식을 널리널리 전파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악기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이해해야 하는, 일종의 창작물로서의 악기들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감이 오지 않는다(본지에 실린 또 다른 원고 “창작물로서의 악기” 참조). 악기들의 맥락과 작동방식이 너무도 제각각인 탓에, 아마도 각 악기마다 필요한 것은 서로 사뭇 다를 것이다.
다만 다음의 질문들은 이제 막 만들어진 악기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악기들의 첫 시작점에는 무엇이, 왜 연주되었고 이후에는 어떤 레퍼토리가 필요한가? 악기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충분히 전해졌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가? 탄생 이후 성장에 관한 이야기일까? 이 악기는 계속 이야기를 담아내게 될까? 혹은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 무정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까? 악기들은 그것을 만든 최초의 창작자 곁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까?
새로운 악기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을지 파악하기 어려운만큼, 떠오른 질문에 모두 답하는 건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까이에서 바라봐온 몇몇 악기들 중 일부는, 적어도 그 첫 단계를 지나 두 번째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 두 번째 단계에서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살펴본다면 그 다음 단계에 대해서도 조금은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의 내용은 12월, 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의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던 백정기와 이금희의 ‘촛불발전기와 전자첼로’ 그리고 김재훈과 이채영과 방준성이 연주한 ‘PNO’에 관한 것이다. ‘촛불발전기와 전자첼로’에 관해서는 두 사람과 함께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가, ‘PNO’에 관해서는 김재훈과의 대화가 글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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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와 이금희의 ‘촛불발전기와 전자첼로’가 처음 완성된 건 2024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 그곳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후, 이 악기에는 첫 레퍼토리가 생겼는데 그건 이금희가 그 이전에도 종종 어쿠스틱 첼로로 연주하던 즉흥곡과 페테리스 바스크스의 〈Grāmata čellam〉이었다. 먼저 즉흥곡은, 즉흥인 만큼 매 순간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5도 음정을 연주하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드론 사운드처럼 저음을 쭉 깔면서 가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이금희는 즉흥곡에서 첼로의 기본적인 조건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사운드를 활용하는, 여러모로 악기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연주를 하곤 했다.
바스크스의 곡은 ‘포르티시모’(아주 세게)와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라 이름붙은 두 악장으로 이루어진 음악이다. 고음에서 현을 거칠게 긁어대며 시작하는 이 곡의 첫 악장은 몇 개의 음형만으로도 첼로에서 얼마나 거칠고 강한 소리가 나는지를 효율적으로 들려준다. 두 번째 악장은 사뭇 차분하게, 활과 현이 섬세히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소리들로 이루어진다. 연주자에 따라 첼로와 함께 연주자가 허밍으로 노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인간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고 하는 첼로의 부드러운 뉘앙스를 강조하는 악장이다. 첼로의 조건으로부터 출발한 즉흥곡, 그리고 첼로의 가장 여린 부분부터 강한 부분까지 아우르는 이 곡들은 무엇보다 연주자만큼이나 ‘전자첼로’라는 악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제격이었다.
한편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뒤 2024년 11-12월, 서울에서 다시 한번 ‘촛불발전기와 전자첼로’를 선보이게 됐을 때 이금희는 바스크스의 곡이 아닌 졸탄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보다 까다로운 테크닉을 요하는 이 곡에서 테크닉을 소화해야하는 것은 연주자의 손뿐만 아니라 악기이기도 했다. 전자첼로는 첼리스트가 악기에 가하는 힘을 충분히 지지하고, 첼로로 구현하는 여러 주법들을 충분히 음향으로 구현해야 했다. 이금희가 이 곡을 연주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건 계절이 지나는 사이, 백정기가 전자첼로를 새로운 재료로 다시 한번 만들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 첼로는 3D 프린터를 통해 제작됐지만 서울에서의 두 번째 첼로는 스테인레스 스틸과 알루미늄, 아크릴 등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충격과 진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악기에게는 더 내구도가 강한 재료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전자첼로에는 소리를 머금고 울려줄 나무 몸체가 없다. 현의 울림이 에너지원을 통해 증폭되어야 하는 이 첼로에서 내가 조금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현과 손끝이 만나 만들어지는 디테일한 제스쳐와 그 소리들이었다. 예컨대 코다이 소나타 1악장 중 고음부에서 한 음을 짚다가 일순간 하모닉스를 연주하거나, 2악장에서 왼손 피치카토를 하는 부분 등. 그리 크지 않은 소리들이었지만, 어쩐지 전자첼로로 연주되는 이 소리에는 좀 더 멋진 노이즈가 섞여서인지, 더 힘있고 존재감있게 다가왔다. 코다이 곡에는 나무 대신 전기선을 타고 흐르는 소리,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뼈대를 울리며 증폭되는 소리와 잘 어울리는 어떤 감각이 있다. 그리고 그 곡을 연주하는 일은, 악기를 손에 맞도록 길들이는 동시에 악기 자체를 제련하는 일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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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O는 세 사람이 모여 함께 연주하는 악기다. 보통은 한 사람이 한 악기를 연주하지만 ‘Prepared New Objects’라는 복수형의 이름을 지닌 이 악기는 총 세 개의 유닛으로 나뉜 하나이자 셋인 악기다. 피아노 의자를 타악기화한 터틀 체어, 피아노 저음부 현을 따로 떼서 연주하는 엘리펀트 첼로, 피아노 현과 해머 부분을 다르게 연주할 수 있게 설계된 핸드 스탠드 라이온이 그 하나의 악기를 이룬다.
2023년 1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100분 가량의 공연 〈PNO〉에서 처음으로 이 악기를 함께 연주했던 건 양현모와 남상봉, 김재훈이었다. 그리고 작년 초연과 올해 재연까지 꼬박 2년에 걸쳐 대극장 공연이 일단락된 후, 김재훈은 30분간의 공연을 새로 구성했다. 대극장에서 다뤘던 모든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 ‘PNO’라는 악기를 중심으로 재편한 공연이었다. 이 재편된 공연에서 연주를 맡은 건 이채영과 방준성, 김재훈이었고, 이채영과 방준성은 각각 드러머와 기타리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김재훈이 이 악기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연주를 맡긴 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연주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악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처음 악기를 만난 두 사람은 악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고는, 기타 피크가 없어 답답해하거나 심벌이 더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는 등, 새 악기에서도 자신의 몸에 친숙한 악기를 찾았다. 하지만 전적으로 다른 이 악기를 기타처럼, 드럼처럼 연주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최대한 손에 익은 감각을 빼고 다른 방식으로 즉흥연주를 이어가며 발견의 시간을 가졌고, 그 연주를 복기하며 많은 것을 되돌아봤다. 여기서 기대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무슨 장면을 상상하며 연주했는지, 어느 순간엔 ‘내가 왜 처음에 기타를 치고 싶었던 것인지’ 등,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까지 보내며 새로운 퍼포먼스를 짰다. 기타를 연주할 때 그랬던 것처럼 여러 이펙터를 연결해놓고 썼지만 방준성은 기타리스트의 방식으로만 악기를 다루지 않았다. 엘리펀트 첼로라는 악기 이름과 정체성에 걸맞게, 현을 활로 연주하며 거칠거칠한 소리를 냈다. 이채영 또한 온갖 드럼과 심벌을 사용해왔지만 이번에는 나무악기인 터틀체어 하나와 루핑 스테이션을 나란히 놓고서는 그 여러 타악기로 만들어내던 복합적인 리듬 패턴을 악기 하나로부터 만들어냈다. 초연무대에서 들었던 ‘PNO’ 연주와는 사뭇 다른 연주였다. 한명씩 솔로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마련되었던 그 연주에서는 악기가 이전보다 더 돋보이기도 했다.
초연 이후, 나는 악기의 스페셜리스트가 된 첫 연주자들이 계속해서 주법을 확장하면서 이 악기의 이디엄을 차근차근 쌓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연주자가 바뀌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연주를 상상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김재훈은 악기에 어떤 어법과 관습을 쌓지 않고, 악기가 무언가를 미리 결정해놓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을 계속하려는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열린 스코어처럼, 계속 비결정의 상태를 유지하는 열린 악기를 만드는 일일까?
처음에 이 악기는 “피아노를 해체하고 새 악기를 만드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나는 지금의 일들이 당위, 근거, 서사를 담는 상징물로서의 PNO뿐 아니라, 동시에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더 열어보려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계속해서 다른 앙상블이 만들어진다면 ‘이 악기의 소리’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인식될지, 한 악기의 가장 주된 정체성이 ‘소리’가 아니라 연주의 태도가 될 수 있는 것일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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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악기가 택한 두 번째 단계는 서로 다르다. 한쪽은 다른 레퍼토리를 이 악기와 연결해보고, 다른 한쪽은 다른 음악가들을 이 악기와 연결해본다. 둘 모두 즉흥연주를 통해 이 악기를 인식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겪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단계를 넘어 이들이 조금 더 주력해서 선보이고자 하는 방식은 다른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다보면 이 악기들이 어디에 도착해있을지 궁금한 마음이다. 전자첼로의 경우, 기존의 첼로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전자첼로에서 가능한 새로운 소리와 주법이 더욱 강화되어, 다른 첼로로는 결코 연주할 수 없는 어떤 음악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PNO의 경우, 더 이상 피아노의 원형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그 형태와 어법이 넓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누적될수록 이 악기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까지 흘러가겠지만 그래도 이들 악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자연스레 설정된 첫 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 같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이 악기가 어떤 종류의 힘으로부터 연주되고 증폭되는지를 잊지 않는 일. 그리고 이 악기가 어떤 재료와 상황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를 잊지 않는 일. 그 음악가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가운데, 계속해서 퍼져나갈 레퍼토리와 연주자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보고 싶다. 그들 중 어떤 것들은, 반드시 이 새로운 악기들만을 위한 음악일 것 같다는 기대에서다.
신예슬 shinyeasul@gmail.com
배움을 위해 가끔 글을 쓴다.
*이미지 제공: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 촬영: 백스텝포워드
*이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지원(개인)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