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집 [+E-L]의 소개글에서, 나는 구토와 눈물의 라이브를 본 경험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메탈, 아니 어쩌면 모든 종류의 ‘음악’에 대해 기대하는 바를 배반하는 시도였다. 제스처, 몸짓, 활력, 헤드뱅잉, 어떤 식으로 구현되든 음악에서 ‘역동성’을 느끼게 만드는 가능성을 스스로 제거하는 것.”
엄청난 음압으로 울려퍼지는 느리고 눅진한 소리를 들으면서 떠올렸던 인상은, 사실 그 이면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을 간직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메탈 뮤지션과는 거리가 먼 경험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그럼에도 메탈의 경계 안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준용(베이스), 조용훈(베이스), 최원겸(보컬)으로 구성된, ‘드럼 없는 3인조 둠/드론 메탈 밴드’ 구토와 눈물을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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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와 눈물의 텀블러 페이지를 보면 첫 공연이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활동해 오신 셈인데, 밴드가 어떻게 결성되었는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원겸: 일단 여기 있는 세 멤버 중 결성의 시발점이 된 사람은 용훈이었어요. 저는 용훈이를 통해서 합류하게 되었고, 지금은 없는 멤버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용훈 씨가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조용훈: 예전에 제가 활동하던 랑쥐(L’ange)라는 밴드가 있었는데, 그 밴드에 류한형씨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 분이 밴드를 새로 해 보자고 저한테 연락이 왔었고, 로라이즈를 같이 운영하고 있던 최원겸에게도 연락을 했어요. 준용이 형한테는 어떻게 연락이 닿았었죠?
최준용: 닻올림 뒤풀이였나? 거기서 류한형씨가 용녀(조용훈)랑 원겸이랑 밴드를 한다고 설명을 들었어요. 다크한 록,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같은 걸 하고 싶다고. 그래서 좋다고 했고, 2012년에 로라이즈에서 첫 합주를 했던 것 같아요.
최원겸: 준용이 형의 합류는 조금 늦었어요. 2011년에 용훈 씨 연락을 받고 합류를 했을 때, 그 당시 류한형씨가 하고 싶었던 건 조이 디비전 풍이었고, 그래서 각자 연습을 한 뒤에 “Blue Monday”를 커버해 보기로 했어요. 그때 포지션은 제가 노래를 불렀고, 용훈 씨가 드럼을 쳤고, 한형 씨가 신스랑 기타를 맡았어요. 당연히 잘 안 됐죠. (웃음) 제 기억상으로는 셋이 해 봤더니 합이 안 맞을 뿐더러 사운드가 굉장히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한형 씨가 준용이 형의 섭외를 시도한 게 아닐까,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Blue Monday” 합주를 하고 한동안 서로 아무런 연락도 안 했던 것 같아요. (웃음)
최준용: 그때는 ‘구토와 눈물’도 아니었고, 아예 이름이 없었어요. 원겸 씨가 보컬, 용훈 씨가 드럼, 제가 베이스, 한형씨가 기타랑 키보드를 맡아서 조이 디비전 풍의 무언가를 합주 때 몇 번씩 했었는데, 크게 진전은 없던 상태였어요. 썩 만족할 만한 결과는 없었지만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했고, 특별히 ‘공연을 하자’ 라는 식으로 심각하게 하기보단 재미로 진행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한형씨가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조용훈: 한형씨가 2012년 10월에 컴퓨터그래픽 공부를 하면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때문에 밴드를 못 하게 되었어요. 대신에 로고를 하나 남기고 가셨죠. (웃음)
포스터에 있던 로고가 그거였군요.
최원겸: 마지막 선물인 셈이죠. (웃음)
조용훈: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합주를 하다가 한 번, 지금의 시초가 될 만한 사운드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조이 디비전 풍으로 가다가 템포를 두 배로 느려지게 해서…
최원겸: 맞아요. 당시에 뭔가를 하다가 잘 안 되니까 좀 더 천천히, 느리게 해 보자고 누군가 의견을 냈어요. 그게 그럴싸했던 거죠.
조용훈: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이 뇌리에 남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씨앗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최준용: 아, 그러면 한형씨가 나가기 전에 ‘구토와 눈물’로 하기로 결정은 되어 있었던 거네? 로고를 만들어 준 걸 보니까.
조용훈: 이름에 대한 제안을 멤버들끼리 이메일로 제출하여 후보를 추린 적이 있는데, 제안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리고 준용이 형 제안 중에 ‘구토와 눈물’이라는 게 있었죠.
최원겸: 각자 중구난방 떠들어댔는데, ‘구토와 눈물’이 제일 많이 지지를 받았어요. 그 당시에 저는 좀 더 과격한 이름을 원했었는데, 준용이 형이 ‘구토와 눈물’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어요. “나의 자녀들에게도 무슨 밴드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말할 수 없는 과격한 이름들도 많았거든요. (일동 웃음) 구토와 눈물이 그나마 가장 덜 과격했던 거죠.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두 번은 겪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밴드 이름이 구토와 눈물이 됐죠.
최원겸: 한형 씨가 그 시점에 나갔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저랑 용훈이랑 밴드 방향성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새 멤버를 뽑지 말고 마음대로 하되 베이스 두 대랑 보컬 하나로 가자. 드럼은 굳이 없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죠. 용훈이도 그 당시에 드럼을 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에는 이미 느린 걸 하자는 생각이 있었고, 준용이 형도 오케이해서 결정이 났죠.
최준용: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걸로 기억해요. 중간에 드럼을 구해야 하나 고민도 살짝 했었는데, 없이 가는 걸로 됐죠.
최원겸: 첫 공연은 로라이즈 마지막 공연이었어요. 그 동안 합주를 해 오다가, 로라이즈 이제 마지막인데 뭔가 해 보자고. 저랑 용훈 씨가 운영진이기도 했고요. 그 날 라인업이 구토와 눈물이 끼기에 무리가 없는 라인업이었어요. 그래서 관객도 거의 없고 딱 좋았어요. (웃음)
조용훈: 노이즈멸치, 구토와 눈물, 최준용-홍철기-박다함 트리오. 그 날 라인업이 이렇게 됐었네요.
최준용 님은 오랫동안 아스트로노이즈 활동을 비롯한 노이즈 음악을 만들어 오셨고, 조용훈 님과 최원겸 님 역시 스클라벤탄츠 등 필드 레코딩/즉흥 음악을 비롯한 영역에서 창작 활동을 진행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경험이 어떻게 구토와 눈물이라는 둠/드론 메탈의 포맷으로 이어졌는지, 혹은 영향을 어떤 방식으로 끼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준용: 워낙 직간접적으로 다 영향이 있어서… 저는 사실 노이즈 음악이랑 구토와 눈물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형식은 다르고, 연주할 때도 코드가 존재하고, 완전 즉흥은 아니지만, 저는 노이즈 음악의 자연스러운 또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구토와 눈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소개가 ‘드럼이 없는 둠/드론 메탈 밴드’라고 되어 있어서, 제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 게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멤버분들이 진행한 예전 활동의 잔상이 겹치기도 했고요.
최준용: 그런 식으로 소개하게 된 것에 저희의 의도가 들어 있긴 해요. 똑같은 노이즈 음악, 아스트로노이즈나 스클라벤탄츠 같은 것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소개를 그런 식으로 한 거죠. 음악을 할 때는 연장선상으로 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프로젝트니까요.
최원겸: 왜 그런 의문을 가지시는지는 알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우리가 ‘메탈 밴드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GBN에서 몇 번 섭외가 와서 공연을 하긴 했지만, GBN 측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렇고 우리를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물론 공유하는 요소가 있긴 하죠. 느리고, 낮고, 보컬도 그렇고. 하지만 ‘메탈 밴드’냐 하면 애매한 부분이 있고, 그 점에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혀 모르는 분들은 그냥 ‘둠/드론 메탈이구나’ 하겠는데, 이런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 입장에서는 ‘어, 음?’ 하는 느낌이 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원겸: 초기에는 레퍼런스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듣기도 했었어요. 흔히 말하는 둠이나 슬럿지(Sludge). 근데 딱히 영향을 받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그냥 “좋네!” 하고 마는 정도.
그러면 둠/드론/슬럿지 등을 개인적으로 즐기시거나 하는 것은 아닌 건가요?
최원겸: 저는 좋아했어요. 캐리온 마더(Carrion Mother)라는 밴드를 좋아해요.
최준용: 썬 O)))(Sunn O))))를 들었을 때 드럼 없이 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 썬 O)))가 훌륭하게 하고 있는 걸 보고 우리도 드럼 없이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조용훈: 제 경우엔 드론 음악은 옛날부터 좋아했지만, 메탈의 경우에는 슬립(Sleep)처럼 유명한 밴드를 듣고 좋다 정도로만 생각했지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저희 멤버 중에서 메탈 전문인 분은 최원겸 씨죠. (웃음)
최원겸: 전문은 아니고, 어렸을 때 좋아했던 거죠.
최준용: (원겸 씨가) 많이 소개해 줬어요.
조용훈: 레퍼런스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최원겸: 레퍼런스를 만들어서 뿌렸는데, 다들 차에서 하나씩 듣고 “아 그렇구나. 그건 그거고 우린 우리 거 해야지” 이런 식으로 돼서. (웃음)
최준용: 물론 다 훌륭한 음악들이고 제가 깊이 있게 듣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메탈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밴드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드럼이 없는 것이 다르게 할 수도 있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슬레이어(Slayer), 앤스랙스(Anthrax)를 많이 듣긴 했지만, 손가락에 익은 연주는 메탈스러운 기타 연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들은 대로 연주하진 않았어요. 그냥 제 방식대로 한 거죠.
최원겸: 드럼과 기타가 없는 게 제약이라면 제약이었지만, 그러한 제약이 있는 게 좋았어요.
조용훈: 다들 다양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떤 제약이 있다는 점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기도 해요. 윌 거쓰리(Will Guthrie) 같은 사람도 드럼 하나로 모든 걸 끝내버리잖아요. 이거 하나로도 설득력이 있구나,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베이스 두 대만으로도 잘 만들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한 레퍼런스들은 여기저기 많았고, 그래서 레퍼런스를 메탈로 한정짓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최원겸: 둠/드론 메탈을 하려고 드럼 없이 베이스 두 대만 가져간 게 아니라, 베이스 두 대와 보컬로만 이루어져 있다 보니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모색해야 했고, 그것이 ‘느리고, 낮고, 어둡고, 시끄럽고, 더럽고, 불쾌한‘이라는 지향점과 만나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구토와 눈물의 음악에서는 메탈 음악에서 느껴지는 정념, 흔히 ‘사악함’이라고 표현되는 정념이 기존의 메탈과 다른 방향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썬 O)))같은 경우에도 멤버들이 로브를 뒤집어쓰고 드라이아이스를 뿌려가면서 공연을 하는 데서 ‘사악함’이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구토와 눈물은 그 사악함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에서는 사악하다 표현할 수 있을 법한 부분이 있고, 제가 받아들이기엔 그 두 가지 부분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기존 메탈과 결이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최준용: 개인적으로는 사악함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긴 한데… 가사는 엄청 사악할 거에요. (웃음) 가끔 들릴 때가 있는데 엄청 사악해 보이더라구요.
최원겸: 가사는 늘 뚜렷하게 있어요. 스토리도 있고. 아까 말씀하신 ‘사악함의 결이 다르다’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리면, 우리 셋 다 ‘어쩌다 메탈이 된(happens to be)’ 음악을 하고 있지만 특정 메탈 장르에 대한 충성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최준용: 리프 같은 걸 만들 때 블랙 메탈의 그것, 블랙 메탈의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염두에 둔 적은 있어요. 그것을 듣다 보면 사악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메탈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사악함이라는 게 장르화된 부분이 없잖아 있기도 하죠.
최원겸: 그리고 음악 외적인 요소들로 사악함을 보완 및 보강하기도 하고요.
최준용: 저희는 그런 식으로, 갑자기 시체 사진으로 앨범 커버를 한다든지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희 스스로한테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걸 하는 건 싫어하니까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스트로노이즈나 스클라벤탄츠 같은 음악도 제가 듣기에는 사운드 자체로 충분히 사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흔히 ‘사악함’이라고 여겨지는 것들과는 연계가 안 되는 거죠.
최원겸: 저희가 ‘흔히 생각되는 사악함’을 추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악한 걸 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요. 밴드 초반에 저희 세 명이 모두 기뻐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합주를 할 때마다 항상 녹음을 하는데, 조용훈 씨가 샤워를 하면서 합주했던 걸 틀어 놨었대요. 그때 ‘아침부터 정말 구역질이 나고 기분 다 잡쳤다’고 그랬는데, 저는 그게 제가 원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악한 건 너무 쉬워요. 일상에 스며들고 침투하는 불쾌함, 저는 그걸 더 높이 쳐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조용훈: 저는 음악 외적으로 사악한 걸 음악과 연결시키는 건 억지라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콘셉트일 뿐이죠. 베이스와 베이스가 충돌할 때의 소리,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걸 일부러 피하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좀 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보고, 그런 관점에서의 사악함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컨셉추얼한 메탈의 사악함과 우리가 만드는 사악함에 차이가 있는 건 확실해요. 사운드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사악해질까, 그런 부분을 좀 더 생각해요. 너무 즉흥으로 가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의 합은 있지만 약간 어긋나게 만드는 것.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에 피치의 차이가 약간 발생할 때 울렁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걸 좋아해요. 그런 지점을 만들어가는 게 좀 더 사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최준용: 저도 두 분 말씀에 동의하고, 거기에 덧붙이자면 ‘공허함’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렵긴 한데, 2집 앨범 자켓이 그런 공허함을 잘 살리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저희는 물론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청자들이 듣기엔) 곡의 구분이 모호하고 어떤 덩어리가 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렇게 왔다 가는 느낌에서 공허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스클라벤탄츠가 했던 필드 레코딩, 버려진 공간에서 했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했던 아스트로노이즈는 정말 소리에만 집중하고 감정이나 감성 같은 걸 의도적으로 배제했지만 구토와 눈물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최원겸: 2집 앨범 자켓 사진은 양화대교 남단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선유도 공원 언저리에서 양화대교를 바라보면서.

[+E-L] 앨범 커버
1집 [Vomit & Tear]를 2016년에, 2집 [+E-L]을 2018년에 제작하셨는데, 두 앨범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차이를 가져갔는지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준용: 첫 번째 앨범은 헬리콥터 레코드(Helicopter Records)에서 음반을 내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2014년 2월에 스페이스문(SPACEMOON)에서 녹음을 했습니다. 그때가 공연도 몇 번 했고, 곡도 음반에 실릴 만큼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한번 합주실에서 녹음을 해 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구요.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머쉬룸 레코딩(Mushroom Recording)에 의뢰해서 스페이스문 공간을 빌려 녹음을 진행했어요.
최원겸: 천학주 씨가 장비를 전부 다 가지고 와서 스페이스문에 셋업을 한 다음 녹음했어요. 그때까지 만든 곡들을 쭉.
최준용: 1집 녹음은 그렇게 하루만에 끝났어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로 레코딩을 진행했던 건 일본에서였습니다. 2017년에 도쿄랑 오사카에서 두 번 공연을 했는데, 그때 타쿠 우나미(Taku Unami)가 공연 기획도 하고 녹음 세션도 진행했었어요. 타쿠 우나미가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녹음과 엔지니어링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서 녹음을 했습니다. 사실 이 레코딩을 두 번째 앨범으로 내려고 기획하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에 신도시에서 구토와 눈물 앨범을 내고 싶다는 연락이 급하게 들어왔어요. 일본에서 녹음한 걸 쓸지, 아니면 새로 녹음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한번 새로 해보자 하고 합주실에서 테스트로 원테이크 녹음을 해 봤어요. 그런데 그 결과가 급하게 한 것치곤 괜찮았어요. 그래서 새로 녹음한 걸 두 번째 앨범에 쓰기로 했어요. 순서를 따지면 세 번째로 녹음한 게 작년에 두 번째 앨범으로 나왔던 거죠. 일본에서 녹음했던 건 분량이 좀 많고 작업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더라구요. 그건 내년에 발표할 계획이에요.

일본에서 진행된 레코딩 세션의 모습 (사진: 타쿠 우나미)
그래서 2집이 1집보다 좀 더 눅진한 느낌이 드는 거였군요.
최준용: 더 지저분하죠.
조용훈: 1집은 전형적인 밴드 녹음의 느낌이고, 2집은 좀 더 DIY 같은 기운이 있어요.
최원겸: 제 기준으로 1집은 너무 캐치하지 않나 싶어요. (웃음)
조용훈: 깔끔하고 정제되어 있지…
정작 1집을 처음 들을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했었는데 말이죠. (웃음) 곡들의 제목이 모두 단순하지만 흔하게 접하기 힘든 단어들인데, 제목이 어떤 식으로 붙은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최원겸: 제목은 전부 준용이 형 아이디어로 기획된 거에요.
최준용: 별거 없는데. (웃음) 제목을 짓는 게 제일 어려워요. 잘 지으면 좋긴 한데 별 의미가 없으니까. 재밌기도 하지만… 제가 제안한 건, 농약 이름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은 웹사이트가 있어요. 거기서 마음에 드는 걸 하나씩 골라서 제목으로 정하기로 했어요.
최원겸: 그 사이트가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모든 농약의 제품명, 그리고 농약에 사용되는 학술 용어를 모아 놓았어요.
최준용: 그래서 어떤 건 제품명을 고르고, 다른 건 학술 용어에서 따왔어요. “Trilogy” 같은 곡도 사실은 농약 이름이에요.
최원겸: 흔한 단어처럼 보이는 것도 다 농약 이름에서 따온 거에요.
조용훈: 다음에는 한국 농약 이름을 따와야 하나? (웃음)
“Trilogy”
구토와 눈물의 음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보면 “Asana”나 “Abamex”, “Orthene”처럼 노이즈와 그로울링을 정적인 상태로 회전시키는 형태, 그리고 “Zeal”이나 “Delta Gold”, “Trilogy”처럼 서사와 진폭에 변주를 주는 형태가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이러한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송라이팅의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최준용: 우선은 합주를 하면서, 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케이스가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곡들은 거의 활동 초반에, 로라이즈가 남아 있을 무렵 합주를 자주 할 수 있었을 때 집중되어 있어요. 그때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길게 합주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곡이 나왔어요. 그때 서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곡이 나왔던 것 같아요. 밴드 활동을 할수록 점점 각자 바빠지고, 가정도 생기고 하다 보니 합주를 예전만큼은 못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기본적인, 반복해서 치는 리프를 만들면 용훈 씨가 거기에 맞춰서 자신의 파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원겸 씨가 보컬 파트를 만드는 식으로 곡을 만들게 됐습니다.
최원겸: 항상 뼈대가 되고 근간이 되는 건 준용이 형의 리프에요. 왜냐하면 계속 끝까지 반복하거든요. 거기서 조용훈 씨가 이렇게 저렇게 변주를 주고, 거기서 틈이 보이면 그때 제가 들어가는 거죠.
최준용: 보컬이 저희 음악에서 빠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저는 원겸 씨가 틈을 채운다기보다 동등한 위치에 있는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해요.
최원겸: 뒤에 있는 질문에 ‘소리가 뭔가 확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고 되어 있던 것 같은데…
예. 분명 시끄러운 소리인데, 뭔가 막을 씌운 것처럼 들려요.
최원겸: 보컬이 가장 뒤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초지일관 유지하고 있어서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아요. 준용이 형이 항상 뼈대를 잡아 주면 그 뒤로.
최준용: 근데 용훈 씨가 만든 리프가 뼈대가 될 때도 있어요.
최원겸: 아 맞아요. 1집은 거의 반반이었어요.
그런데 곡을 듣다 보면 베이스가 두 대라는 건 알겠는데, 사운드 자체로는 그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조용훈: 준용이 형이 뼈대를 만들고 제가 나머지 살을 치다 보니까 이게 곡인지 잼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에요. 근데 그건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웃음) 잼처럼 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멤버들이 다들 ‘이건 아니잖아’ 하고 딱딱 자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해요.
최원겸: 서로 눈치껏 하는 거에요. (웃음) 흔히 말하는 ‘몇 마디’ 이런 건 없죠. 조용훈 씨가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셔서 부연설명을 조금 드리자면, 준용이 형이 틀을 짜 오면 나머지는 용훈이가 다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역할이 많아요. 용훈이 컨디션 등에 따라서 곡의 느낌이 바뀌기도 해요.
조용훈: 근데 그래도 전 언제나 제일 중요한 게 뼈대라고 생각해요.
최준용: 그렇지만 저만 연주하면 굉장히 지루할 거에요. 제가 똑같이 계속 연주하면 용훈 씨가 폭넓은 연주로 커버를 해 주죠. [+E-L]을 녹음할 때 사전에 준비한 게 정말 하나도 없었거든요. 전부 다 새벽에 모여서 그 자리에서 새로 만든 곡인데, 저희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최원겸: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 날 컨디션도 정말 안 좋았는데, 준용이 형이 만들어 온 리프가 설득력이 있었고, 용훈 씨가 정말 다채롭게 연주를 했거든요. 사실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한 곡이 10분이 넘어가는데 자기 혼자 기승전결, 극적인 전개, 완급을 다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저는 합주 때도 그렇고 공연 때도 그렇고 준용이 형한테만 의지해서 목소리를 내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에요. 용훈 씨가 워낙 자기 역할을 잘 해주거든요.
최준용: 사실 연습도 많이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면은 저희가 부족한 것도 있어요. 근데 오래 연주하면 손이 너무 아파요. 어려운 거 치는 것도 아니고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웃음)
아까 살짝 말씀드린 것처럼, 분명히 시끄러운 소리들인데 거기에 어떤 막을 씌운 듯한 인상이 듭니다. 귀를 파고든다, 혹은 찢는다기보단 전신을 덮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구토와 눈물만의 독특한 음향적 성격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사운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도를 지닌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최원겸: 일단 믹싱과 마스터링의 경우는 준용이 형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최준용: 밴드 초기와 현재에 차이가 좀 있어요. 최근에는 용훈 씨가 높은 음역대도 어느 정도 내고 있는데, 예전에는 많이 둔탁한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 구토와 눈물의 소리를 잡을 때, 디스토션을 너무 많이 쓰지 않고 찌그러지지 않는 소리, 아무런 이펙터도 거치지 않은 소리를 엄청나게 크게 내려고 했어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되길 원했죠.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곳이 거의 없고, 저도 그런 걸 준비할 여력이 안 되어서 점점 공연할 때나 합주할 때 앰프 상황에 따라서 맞추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어요. 지금은 처음 구상과 달리 찌그러지기도 하고, 더 지저분해지기도 했습니다. 질문에서 말씀해 주신 ‘막을 씌운’ 느낌은 세 명의 소리가 하나의 덩어리, 유기적인 무언가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아요. 어떤 한 소리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한 거죠.
그러면 믹싱을 할 때 어떤 한 트랙을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신 거네요.
최준용: 네. 물론 어느 정도의 구분은 되어야겠지만, 세 개가 어느 정도 겹쳐져 있게끔 믹싱을 했습니다.
최원겸: 그래서 저희 뮤직비디오, “Trilogy”를 잘 모르는 분들한테 보여주면 전부 보컬이 언제 나오냐고 질문해요. (웃음) 구분을 못 하시는 분들이 은근히 있어요. ‘5분이 지났는데 왜 보컬이 안 나오냐’ 하시는 분도 있고. 심지어 평소에 음악을 좀 듣는다 하시는 분들한테서도 이런 반응이 나오는데, 제가 작년에 사운드 디자인 수업을 들었을 때 사운드 하시는 분들도 보컬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이런 장르를 평소에 듣지 않은 분들은 구분이 잘 안 되나 봐요. 그런 반응이 준용이 형의 의도한 바가 적중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웃음)
최준용: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지. (웃음)
최원겸: 물론 그것도 있고요. ‘이게 사람 목소리야? 니가 사람이냐?’ (웃음) 용훈 씨 이야기도 들어 보면 좋겠는 게, 공연 때나 합주 때는 용훈이도 자기 사운드를 잡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조용훈: 준용이 형의 경우에는 메탈처럼 쏘지는 않아도 엄청난 음압을 갖고 있는 소리를 원하시는데, 제 입장에서는 곡에 기승전결을 줘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톤으로 계속 가면 힘든 게 있어요. 준용이 형과 안 겹치지만 겹치는 그런 사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악기가 베이스다 보니 높은 피치를 내더라도 뚫고 나가는 소리는 많이 못 만들게 되네요. 그런 점에서 ‘귀를 파고들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저 나름대로는 베이스지만 베이스가 아닌 것처럼 들리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준용이 형보다는 쏘는 사운드를 좀 더 많이 내려고 하는데, 라이브에서는 그게 드러나지만 레코딩에서는 준용이 형의 콘셉트에 맞게 덩어리가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레코딩과 라이브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최원겸: 많이 다르죠. 사운드뿐만이 아니라 곡도 좀 달라요.
조용훈: 그리고 라이브에서는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앰프의 한계가 있어요. 확실히 앰프를 사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웃음) 일본에서 녹음을 했을 때 합주실이지만 앰프에 굉장히 만족했던 기억이 나는데…
최준용: 아까 말씀드렸던 디스토션 안 걸리고 음압이 높은 깨끗한 소리가 일본 녹음에서는 잘 된 것 같아요. 제가 의도했던 ‘막’이 제대로 씌워진 느낌이었어요.
구토와 눈물의 음악을 듣다 보면 ‘더럽다’거나 ‘혐오스러움’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더러움’, 혹은 제가 쓴 2집 소개글에서의 묘사인 ‘권태감’을 정말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러움’이라는 개념에 대한 멤버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최원겸: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악함’을 추구하려는 생각이 없고, 오히려 ‘더러움’, ‘불쾌감’, ‘이질감’, ‘구역질이 나는 기분’을 추구하고 싶어요. 여기에 대해서 사악함의 외피를 두르지 않았냐 하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저는 사악함은 뭔가 거기에 선행되는 경험이나 지식이 있어야 성립한다고 생각해요. 보거나 만지거나 들은 다음에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그것을 ‘아, 이건 사악한 거구나’라고 판단하는 과정이 들어가는 거에요. 사악함은 그런 종류의 인식이 필요해요. 근데 더러움이나 불쾌감은 국적, 인종, 나이, 젠더를 초월해서 누구나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마다 사악한 게 무엇인지는 조금씩 다르잖아요. 그러한 컨벤션을 조금만 알면 사악함은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러움은 그렇지 않아요. 청자로 하여금 구역감이 들게 한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저는 그게 분명 하나의 성취라고 생각해요. 어렵거든요. 사악함은 달성하기 쉬워요.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오는 걸 적당히 짜집기하면 바로 나올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기존 메탈에서 구역감이나 더러움을 가장 먼저 연상시키는 건 그라인드코어나 데스 메탈, 블래스트 비트에 맞춰 꿀꿀거리는 보컬 등의 요소입니다. 근데 구토와 눈물의 더러움은 그것과 또 다른 느낌이에요.
최원겸: 좀 다르죠. 느리고, 울렁거리고, 체할 것 같고. 저는 이게 좀 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더러움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 막 찢어 죽이는 그림 뒤에서 으아아거리고 있으면 당연히 움찔하게 되는데, 그러지 않고 천천히, 나른하게, 등 쓸어주는 척하면서 체하게 만드는 (일동 웃음) 이런 건 나름의 성취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쉽지 않은 일이고요.
조용훈: 저는 보컬의 힘이 더러움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최원겸: 흔한 보컬인데? 또 덕담 잔치 한다. (웃음)
조용훈: 아니야, 진짜로 그래. (웃음) 저도 듣고 있으면 숨막히는 느낌이 들거든요. 더러움을 음향적으로 잘 녹여 주고, 완급도 살아 있는 보컬이에요.
최준용: 구원 씨께서 이렇게 느끼셨다는 게 저희 입장에서는 성취라 여겨지고 개인적으로 기쁜 게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기존의 데스 메탈 같은 경우에는 더럽다는 걸 아주 화려하고 깨끗한 접시에 내서 보여주는 건데, 저희는 더럽고 지저분한 방이 그냥 펼쳐져 있는 느낌이에요. 음질 좋게 녹음을 하고 훌륭한 테크닉으로 그런 걸 잘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저분하게 녹음한 건데 그런 접근 방식이 저희 음악의 더러움을 잘 부각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음을 잘 하기 위해서 고가의 장비를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차피 지저분한 걸 표현할 거라면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그런 효과를 잘 살린 것 같고요.
라이브 앨범 [live at hopken]
구토와 눈물의 라이브는 레코딩보다 훨씬 더 시끄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브의 음압을 레코딩에서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한데, 라이브를 진행할 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임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최준용: 일단 최대한 클럽에 있는 장비를 활용해서 하려고 해요. 베이스 앰프가 두 대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클럽에는 베이스 앰프가 한 대밖에 없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최대한 크게 가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사운드가 너무 찌그러지지도 않게 하려고 하고요. 뭘 치던 간에 구분이 안 가면 안되니까요. 레코딩은 저희가 그런 걸 컨트롤할 수 있지만, 라이브에서는 그게 안 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저는 그냥 계속 피드백을 내기도 해요. 어차피 그 지경까지 가면 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니까요.
최원겸: 그런 가운데 용훈이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거고요. (웃음) 중요한 공연을 할 때는 저희가 장비를 따로 빌려서 가져오기도 해요.
혹시 라이브에서 큰 소리를 낼 때 어떤 점에서 조정이 어려운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최원겸: 일단 장비가 큰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게 일차적인 문제에요.
최준용: 음량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볼륨을 올려도 소리가 커지지도 않을뿐더러 내부에서 찌그러드는 거죠. 예를 들어 조그만 이어폰으로는 아무리 소리를 크게 올려 봤자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한 거에요.
조용훈: 어떤 면에선 이게 한국 클럽의 문제인 것도 같아요. 소리를 크게 하려고 해도 앰프 자체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엔지니어가 공간에 맞게 받쳐 줘야 하거든요. 근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해 줄 만한 클럽이나 공연장이 한국에는 없어요. 저도 공연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큰 공연장에서도 베이스 앰프 소리를 줄이라고 해요. 상상마당에서 선결로 공연을 했을 때, 저는 앰프 자체에서 나오는 큰 소리를 좋아하는데, 볼륨을 5까지만 올렸는데도 너무 크니까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엔지니어로부터 들었어요. 엔지니어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연주자가 아무리 크게 하려고 해도 믹서를 잡고 있는 쪽에서 줄여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선결 공연을 좀 더 설명드리면, 하도 제가 앰프 소리를 크게 하니까 베이스 소리를 아예 메인 스피커에서 안나오게 끊어 버렸어요. 어이가 없었죠. 그런 경우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저는 단지 앰프 문제만은 아니라고 봐요. 조그마한 앰프더라도 PA를 크게 하고 모니터를 크게 받을 수 있으면 즐겁게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희가 그렇게 큰 밴드도 아니고… 아쉬운 부분이 있죠.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앰프가 터지도록 공연을 해 본 적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엔지니어 중에서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한계죠, 아무래도.
시끄러운 공연을 많이 가는 편인데, 그 공연이 진짜 ‘시끄럽다’고 느꼈던 적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최원겸: 그냥 소리만 큰 거죠.
최준용: 오히려 시청 앞 광장에서 하는 공연이라든지… 지난 달에 시청 근처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저쪽에서 인순이 공연 소리가 들려왔어요. 베이스가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최원겸: 온누리에 울려퍼지죠.
최준용: 그런 음악을 대할 때 엔지니어의 접근하고, 우리 같은 음악을 대할 때 엔지니어의 접근이 완전히 달라요. 우리는 다르게 취급하는 거죠.
최원겸: 근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리가 작아도 시끄럽게 들리기 때문에… (웃음) 높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긴 들 거에요. 꼭 소리가 크다고 시끄러운 게 아니니까요. 자기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겠죠. 장비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조용훈: 공간의 문제도 생각해보고 싶어요. 일본에 홉켄(Hopken)이라고 지금은 없어진 공연장이 있는데, 거기도 굉장히 조그만 공간이거든요. 지금 인터뷰하는 곳보다도 훨씬 작은? 근데 조그만 앰프로도 그 공연장 자체가 울렸으니까요.
최준용: 일본은 확실히 엔지니어들이 자기 클럽에서의 소리를 자신이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더 크게, 더 해도 된다,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그것이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엔지니어분들은 장비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청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곡이 내가 레코딩에서 들었던 그 곡이 맞나? 즉흥으로 연주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건 아니고, 형태가 불분명한 음악에서 즉흥과 즉흥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감각이 재밌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라이브에서 곡을 따라서 연주하시는지, 아니면 즉흥을 섞으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최원겸: 저는 라이브에서 레코딩된 곡을 별로 참고하지 않아요. 형이 늘 저한테 들어보고 오라고 얘기하지만 안 들어요.
조용훈: 실제 레코딩과 똑같은 건 준용이 형 리프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최원겸: 과거에 합주를 했던 경험에 의지해서 하는 거죠. 근데 저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일에 다른 두 분의 컨디션이나 상태가 어떨지 모르잖아요. 보컬의 순서는 언제나 맨 마지막에 시작하고, 끝나는 것도 웬만하면 보컬이 제일 먼저 끝나니까, 일단 봐야 해요. 저희는 리허설할 시간도 늘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운드 체크만 하고 공연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작을 하면, 저는 1분 정도 가만히 있으면서 어떤가를 봐요. 식당 가서 오늘은 뭐가 맛있냐고 물어보는 느낌이에요. (웃음) 준용이 형은 항상 기복이 별로 없는 편이고요, 그래서 용훈 씨가 하는 걸 보고 잠깐의 틈을 찾아서 비집고 들어가는 거죠. 저는 즉흥을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늘 새롭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준용: 각자 자기 몫을 하는 거죠. 곡의 순서는 분명히 있고, 길이도 ‘대충 10분 정도’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나마 있어요. 제 연주는 거의 변화가 없어요. 저까지 변화가 있으면 갈피를 못 잡고 다 무너지는 거니까. 그게 제 몫이고, 용훈 씨는 거기서 배리에이션을 줘서 곡을 풍부하게 만드는 게 몫이죠. 원겸 씨는 보컬로서 곡을 더럽게 만들어주는 것.
최원겸: 끔찍하게! (웃음)
최준용: (웃음) 메탈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주는 거죠.
사실 둠 메탈이나 드론 메탈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자체가 레코딩과 라이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경험이라고도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썬 O)))나 어스(Earth)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곡대로 하는 걸까’란 생각도 들지만 일단 제가 레코딩을 기억을 못 하는 문제도 있어요. (웃음) 들어본 리프가 나오는 것도 같은데 그 기억이 불분명한 거죠.
최원겸: 구토와 눈물 초기에는 즉흥 음악 말고 진짜 딱 짜인 밴드 음악을 하자고 해서 시작한 건데, 이렇게 됐네요. 중간에도 몇 번씩 잘 짜서 해보자 그런 얘기는 있었는데, 우리가 못 따라갔죠. (웃음)
최준용: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고… 이미 했던 걸 오랜만에 다시 할 때 곡을 듣고 오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 정도의 제안이었어요. 물론 새롭게 하면서 새로운 느낌이 생길 수도 있고, 그게 저희 장점일 수도 있다고 봐요.
최원겸: 그래도 늘 엇비슷하게는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나 준용이 형은 이 문제에 있어서 그나마 좀 편한 위치인데, 용훈 씨가 부담이 많죠. 용훈 씨가 맡는 부분은 애초에 기억해 놨다가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니까요.
조용훈: 그런데 레코딩이란 게 순간의 기록이다 보니까, 그것들을 까먹었다 다시 떠올릴 때 좀 힘든 부분이 있어요.
최원겸: 맞아요. 그리고 저는 레코딩이 최상의 버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레코딩 전후로 합주할 때 분명히 더 좋은 게 있었는데 그 날 그 시간에 그게 녹음된 것뿐이다, 그렇더라구요. 저희한테는 레코딩이 뭔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 같은 게 절대 아니에요. 하나의 버전일 뿐.
제가 보았던 라이브에서 최원겸 씨는 무대에 나오지 않은 채로 노래를 부르셨는데, 언제나 그렇게 라이브를 하시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최원겸: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일단 저는 무대 위에 베이스 두 대만 서 있는 풍경이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건 별로에요. 예전에 GBN에서 공연할 때 제가 하도 모니터가 안 되어서 무대를 내려가서 공연했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무대 위에 베이스 두 대만 있는 모습이 멋있더라구요.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쑥스러움을 잘 타고 숫기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보컬이 무대 위에서 할 게 별로 없어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죠. 악기를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이 방방 뜨는 것도 아니고… 합창단처럼 서 있을 바에는 내가 사라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최준용: 저희가 합주할 때는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진행해요. 처음 로라이즈 공연 때도 가운데 촛불을 켜 놓고 무슨 의식처럼 셋이서 삼각형 구도로 공연을 했고요. 저는 그게 좋아서 원겸 씨한테 나오라고 하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베이스 두 명이 있는 풍경도 멋있구나 싶네요.
조용훈: 클럽의 무대라는 공간에 맞춰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이 아니라면 삼각형 구도로 하는 게 제일 좋거든요.
최준용: 그렇죠. 무대는 정면을 바라보게 만드니까요. 로라이즈는 삼각형 구도가 가능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에 신도시 공연에서도 삼각형으로 할 수 있겠네요.
공연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신나는 음악 하는 밴드라고 해도 악기 없는 보컬은 공연할 때 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특히 노래가 없는 파트에서. 어떻게든 그 애매함을 이겨내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면 좀 안쓰럽게 느껴지죠. (웃음)
최원겸: 액슬 로즈(Axl Rose) 같은 사람이 아니면 정말… (웃음) 액슬 로즈는 보컬인데도 누가 보면 악기 한 3개 연주하는 사람처럼 너무 바빠. 제가 한때는 춤이라도 춰 볼까 하고 빙글빙글 도는 춤을 연습했는데, 두 분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셔서…
조용훈: 왜, 툴(Tool) 같은 보컬 멋진데(웃음) 그래서 언젠가는 보컬이 가장 먼저 나오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원겸 씨가 그리신 일러스트레이션 및 밴드 로고도 인상적인데, 저는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이 진짜로 ‘사악’하다기보다는 사악함을 약간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각 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원겸: 로고는 제가 연필로 그린 다음에 그 위에 사인펜으로 색칠해서 스캔한 거에요. 1집 나올 당시에 1집을 위해 준비했죠. 근데 시각적인 요소는 사실 구토와 눈물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앨범을 내는 데 아무것도 없이 낼 수는 없는데 제가 그림 연습하는 걸 좋아하니까 저한테 기회가 돌아오는 거에요. (웃음) 구토와 눈물에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최준용: (웃음) 그렇다고 아무거나 넣을 수는 없잖아. 심혈을 기울인 거에요. 특히 1집의 경우에는 그림도 강렬했고.
최원겸: 2집에서 눈알하고 비닐 패키징 같은 건 신도시의 아이디어였어요. 저는 그림까지만 그린 거. 항상 뭔가를 낼 때가 되면 그림을 제가 그려도 되냐고 멤버들한테 물어봐요.
최준용: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조용훈: 저도요.
최준용: 구토와 눈물 로고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로고 박은 후드티도 만들었으니까요. 그 로고는 계속 쓸 거고, 앨범 발표할 때 항상 들어갈 거에요.
최원겸: 패러디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해 주셨는데, 패러디는 아닙니다. 제게 그럴 재주도 없고요. 나름 진솔한 분노를 그림에 담아보려 합니다.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진하겠습니다.

최원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한 티셔츠 (사진: BEM)
기획 공연 <Tears In Heaven>의 두 번째 공연을 앞두고 계신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간략히 예고를 부탁드립니다.
최준용: 일단 내년에 일본에서 녹음했던 레코딩을 발표하려 하고, <Tears In Heaven> 공연도 계속 진행하려고 해요. 신도시에서 공연 전용 공간으로 별관을 처음 만들었을 때, 신도시만으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기 힘든 부분이 있으니까 여러 분들한테 의뢰를 하셨어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 구토와 눈물로 진행을 하기로 한 거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올해 공연을 한 번도 못해서 저희 공연을 하기 위한 것도 있어요. (웃음) 그 동안은 섭외가 들어와야 구토와 눈물 공연을 할 수 있었는데, <Tears In Heaven>은 저희가 기획하는 거니까 적어도 1년에 서너 번은 하려고 해요.
뮤지션 섭외도 좋은 아티스트분들을 불러오시는 것 같아요.
최준용: 저희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분들을 섭외하고 있습니다. 3명이 관심 있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니까,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1월 8일 열리는 공연 <Tears In Heaven>의 포스터.
정구원 | lacelet@gmail.com
음악웹진 [weiv] 편집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대중음악을 듣고 그에 대해 쓰고 있으며, 대중음악의 범위와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