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길은 소리에 접근하는 대안적인 사유 방식과 그것을 통한 소리의 허구적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업은 어둠의 세계와 통하는 메타언어를 개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팝 밴드를 했던 시절부터 현재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고 과정들이 있었는지, 또 소리와 관련된 기획이나 연구에서 함께 생각해 볼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류한길과의 인연은 2014년 필자가 소논문을 준비하면서 그에게 파일럿 인터뷰와 자문을 요청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필자는 아티스트들이 소리에 접근하는 개념적인 방식을 궁금해했고 류한길에게도 관련된 질문을 했었다. 2년 뒤 필자가 본격적으로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그에게 다시 한번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됐는데, 이 지면에 실린 대화는 두 번째 인터뷰의 전문을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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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팝 음악을 하셨을 때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시다가 점차 실험음악 쪽으로 행보를 바꾸셨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음 일단은 밴드 활동에 대한 염증이 좀 있었어요. 아무래도 여럿이서 음악을 만드는 게 민주적이기가 어렵더라고요. 한두 사람이 어느 정도 독재를 해야 일이 풀리거든요. 저는 좀 선택권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리더가 이렇게 하자고 했을 때 그렇게 가야만 하는 부분들을 참고 가는 성격이 못됐어요. 그걸 잘 받아들이면서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들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군대도 가야 하고 해서 자연스럽게 (밴드에서) 빠지게 됐죠. 그리고 (제대하고) 돌아와서 (음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즈음 제가 가지고 있던 키보드에 여러 소리가 있고, 키보드 자체에 소리를 만들고 곡을 만들면서 연주까지 할 수 있는 자동 시퀀스 기능이 있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그걸 팠죠.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멤버가 필요 없더라고요. 저 혼자 키보드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했고요. 저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혼자 했어요. 그땐 그게 저에게 최적이었던 건데, 어느 날 갑자기 테크노 붐이 터지더니 제가 테크노 1세대로 분류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테크노라 불리는 게 딱히 없었거든요. 근데 처음에 그걸 의식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영향을 받았던 아티스트가 있나요?
그때는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나 프로디지(Prodigy) 이런 음악가들을 좋아했어요. 팝송은 지금도 좋아해요. 팝 밴드를 했었기 때문에 팝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진 않았어요. 근데 제 신디사이저가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걸 더 넘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소리적으로 넘어가 보고 싶었어요. 그걸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려 하니까 자연스럽게 팝적인 것과 멀어진 것 같고요. 할 수 있는 걸 하려 했고, 기왕이면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면서 살려다 보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죠.(웃음)
저의 경우는 노이즈/즉흥 음악을 처음 접했던 시기가 2007년이었습니다. 2007년 이전은 자료로만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티스트 분들을 만나게 되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PC통신에 두 개의 음악 커뮤니티가 있었어요. 헤비메탈 동호회 안에 모던 록 소모임(모소모)이 있었고, 비-사이드(B-Side)라는 또 다른 커뮤니티가 있었어요. 두 커뮤니티가 음악 취향이 달랐어요. 둘 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거기서도 취향 차이가 있었어요. 모던 록 소모임은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멤버들이 주축으로 활동했고, 비-사이드는 홍철기, 최준용 등이 활동했어요. 그때는 이상하게 취향 경쟁 같은 게 좀 있었어요.(웃음) 우리가 듣는 음악이 더 좋지 하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어요.(웃음) 그런 부분에서 모소모는 좀 더 팝적인 노선이었고, 비-사이드 쪽은 더 언더그라운드한 취향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홍철기, 최준용이 아스트로노이즈(astronoise)라는 듀오로 공연을 했는데, 모소모에서 코스모스라는 밴드를 하는 친구랑 제가 그걸 보러 간 거예요. 그 공연을 보고 되게 놀랐어요. 이야 이렇게도 음악이 가능하구나! 하고 깜짝 놀랐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그때 같이 갔던 친구는 ‘아니 이런 음악을 할 거면 집에서 지들끼리 하지 왜 밖에 나와 가지고 이런 걸 하냐’ 그러더라고요. 그 뒤로 그 친구와는 연을 끊었어요.(웃음) 저는 아스트로노이즈의 느낌이 좋았어요. 큰 감흥을 받았고 두 친구한테 호감을 느꼈어요. 그 둘이 사토 유키에 씨가 기획하는 ‘불가사리’라는 즉흥음악 콘서트에도 참여하는 걸 봤는데, 거기서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와 사치코 엠(Sachiko M)을 처음 봤어요. 그때 노이즈뿐만 아니라 즉흥연주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노이즈가 어떤 굉음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만 가지고 하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때부터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래서 신디사이저도 포기하고 오브제 갖고 뭘 해보려고 하고요.
정규 음악교육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피아노를 어린 시절부터 배우긴 했는데 지금은 하나도 못 쳐요. 저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쌓여온 음악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게 한 가지 있어요. 그건 기존 음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음악에 대한 믿음이 다른 음악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거예요. 기존 음악으로도 시스템은 잘 돌아간다고 봐요. 교육도 그렇게 돌아갈 거고요. 학계도 그럴 거고요. 근데 다른 음악이 등장했을 때 기존 시스템은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요. 받아들이면 자신들이 유지하고 있던 권위가 무너지거든요. 그래서 기존 음악은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방어적 기제가 교육 쪽으로 접근될 때는 다른 음악의 가능성이나 생각의 가지들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보고요. 저는 음악교육의 다크 사이드가 거기에 있다고 봐요. 어떨 땐 뭐가 좋다/나쁘다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구분해서 따로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기존 것은 그것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있어서 역사적 자리를 잡은 것이지만, 그게 모든 음악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기준을 벗어나는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관점도 변하겠죠.
다양한 이름의 솔로 뮤지션으로, 또 팀으로 활동 해오셨습니다. 포지션이 바뀔 때마다 작업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차이를 두기 전에는 항상 어떤 식의 충격이 있었어요. 아스트로노이즈나 오토모 요시히데나 사치코 엠이나 불가사리 같은 충격이요. 근데 그 타이밍이 참 재미있는 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한계와 환멸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 꼭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사건들이 있었어요. 어떤 흥분이 가라앉았다가 또 새롭게 흥분이 되었다가… 그 기복이 계속 있었던 게 작업자로서는 되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데이트리퍼(Daytripper)를 그만두고 전자음악 쪽은 관심을 끊고 살다가 이상하게 타자기를 갖고 장난치다가 다시 한번 전자음악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그건 더 복잡한 이유가 있었어요. 사물의 소리에 접근하다 보니 그 사물의 소리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사물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다소 허구적인 아이디어가 생겼고, 그걸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위해서는 신디사이징 기술이 필요했으니까요.
‘불길한 저음’처럼 제스처가 큰 활동은 없으셨나요?
저는 불길한 저음에 개입을 안 했어요. 그 시절에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노이즈라고 했을 때 그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 에너지를 펑크 록처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안 내켜 하는 중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노이즈를 더 대중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근데 불길한 저음은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적 액티비즘하고도 관련이 있었다고 봐요. 정치적인 수단. 당시에 저는 다른 음악 자체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불길한 저음 친구들은 발언의 방식을 개발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노이즈를 다룬다고 했을 때 막상 저는 노이즈를 다룬다고 생각을 잘 안 해요. 음악 안에 포섭이 안 되고 외부의 시선에 의해 노이즈로 분류되니까 노이즈라는 것이지 제가 스스로 노이즈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에겐 듣기 좋은 음악이거든요. 다만 부정적 의미가 아닌 신호 처리에서 의미하는 노이즈는 또 입장이 다른데, 저는 새로운 노이즈는 더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듣기 좋은 노이즈라고 말한다면 그건 제 나름의 음악 외에 또 다른 가치판단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근데 제가 노이즈로 분류되면서도 별로 안 좋아하는 음악이 있어요. 이펙터를 여러 개 쌓아 놓고 록킹하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를 특정 시기 이후로 그다지 안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또 막 싫어한 건 아니었는데, 록의 에너지를 내가 굳이 왜 노이즈에서도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디지털 전자음악으로 돌아오면서 노이즈에 대한 관념 자체도 많은 부분이 바뀌었어요. 노이즈가 더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아마 그 부분에서 사회적 액티비즘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 같아요.
불가사리에서 함께 활동하시다가 이후에 분리되어 나와 ‘릴레이(RELAY)’를 기획하셨습니다. 다른 기획을 시도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불가사리는 불가사리만의 성향이 있었어요. 프리하고 오픈돼 있는 분위기였어요. 만약 오늘 누구와 누가 연주를 하기로 해서 둘이 연주를 하는데 관객 중 한 명이 무대로 들어와서 같이 두들겨도 괜찮은 분위기가 있었죠. 당시에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저 두 사람의 즉흥연주가 듣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그 긴장감이 깨지는 걸 불편해했죠. 그래서 조금 다른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홍철기, 최준용, 그리고 저 이렇게 같이 하는 건 좋은데 뭔가 좀 더 정립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나마 저는 불가사리에 뒤늦게 들어간 편이었고 내부 개입도가 낮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미대를 나오면서 아트 펀딩 개념을 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릴레이를 시작할 수 있었죠. 1년 동안 매달 연주회를 개최해서 기록을 쌓고 그걸로 펀딩을 했는데, 2년 차 됐을 때 덜커덕 된 거예요. 그러면서 해외 작가를 초청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그 단계에서 기획을 하는 방식, 큐레이팅을 하는 방식을 좀 더 행정적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그리고 진상태 씨도 함께했고요. 이 네 명이 릴레이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힘으로 작동했어요. 일종의 작은 커뮤니티처럼요. 그게 해외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그전에는 유럽의 뮤지션들이 일본을 되게 동경하면서 갔어요. 대국인 중국을 거쳐서 일본에 가고 일본을 거쳐서 다시 중국에 가는 루트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국은 항상 그냥 지나가는 곳이었어요. 근데 저희가 노출되면서 도는 김에 한국도 들리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저희에게도 기회가 확장됐고요. 유럽도 계속 새로운 것들을 소개해야 하니까요. 한국에 이상한 애들이 있더라 하면서 소문이 나고 저희도 해외에 나갈 기회가 종종 생겼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귀게 되고 네트워크 범위도 넓어졌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시도 해볼만한 어떤 가능성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또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당시 유럽의 즉흥음악 시장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으로 우리에게 접근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이유는 그 관점이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을 거쳐서 인도네시아나 태국과 같은 곳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흥미로운 소비 거리로 취급받는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 문화 경제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오히려 고유의 음악적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로컬 아티스트가 외부에 노출되면 이후로는 그 아티스트에 대해 알고 싶은 업계 관계자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도가 ‘한국에도 노이즈 씬이 있다’ 는 것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면, 확실히 로컬 아티스트의 음악적 독자성보다는 ‘한국의 노이즈’ 라는 콘텐츠가 1차적으로 더 많이 소비되는 것 같아요. 사실 릴레이가 네 분의 작은 커뮤니티로 보이기는 했지만 각 개인이 두각을 드러냈던 분야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홍철기, 최준용은 노이즈 계열의 음악으로서는 국내에서 최초이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거의 독보적이죠. 외국에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두 사람의 업적이 제일 크다고 봐요. 그리고 사토 유키에라는 분의 업적도 있어요. 홍철기, 최준용이 노이즈 음악의 시발점이었다면 사토 유키에 씨는 전자즉흥음악 씬의 초석이 되는 일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그 노출 빈도를 조금 높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요. 진상태 씨는 계속 같이 개입을 해오다가 운영에 대한 방법론을 딱 보여준 사람이었고요.
릴레이를 운영하시던 시기에 미술계의 주목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당시 미술계가 사운드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셨고 관련 글도 몇 편 쓰셨는데 그런 입장을 취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미술계에 사운드아트 붐이 일면서 저희가 사운드 아티스트로 불리는 상황이 있었어요. 초기에 저는 사운드아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그 근간이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미술계는 항상 새로운 걸 찾는데 저는 찾는 것은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접근법이 자꾸 소재화를 시켜요. 그들이 생각하는 뭔가가 있고 그 생각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갖다 쓰는… 저의 경우에는 거기에서 충돌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제 음악이나 활동이 소개되면서 현대무용 쪽에서도 컨택이 와서 무용음악도 많이 했는데 좀 불편하더라고요. 사실 무용도 콤포지션(composition)이잖아요. 저는 그 콤포지션 자체가 어떻게 소리로 바뀔 수 있는가의 문제에 흥미가 있었는데 막상 음악을 맡아서 작업을 하면 결국은 안무가가 요청하는 감정팔이 처럼 분위기 깔기용 음악이 되는 것 같았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뻔한 감정을 일으킬만한 강렬한 비트를 만들어줘야 했고요. 그런 게 싫어서 지금은 무용음악은 잘 안 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방식과 무용이 잘 연결되는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요. 이후 세대 안무가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니 말을 못 하겠고, 특정 세대 이상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용이라는 고정된 관념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 쪽에서도 사운드아트로 들어오면서 결국 시각예술에 대한 관념을 다루는 소재로서 사운드를 다루려 하고요. 예를 들면, 심리적이든 사회적이든 어떤 폐허에 관련된 작품에 소리가 동원된다고 했을 때, 텅 빈 공장의 어딘가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동원되는 방식인거죠. 저는 그런 관점이 소리에 대해 매우 좁고 피상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사용하는 효과음 같은 것이 시각예술 작품의 영화적 연출을 위해 동원되는 정도의 수준이랄까요? 사운드 전시를 해도 자주 회의감에 빠졌던 건 소리가 분명히 공간을 채우고 있는데 들어와서 볼 것을 찾는다는 거죠. 저는 일반 관객이 오셔서 그러는 건 이해가 돼요. 그분들이 이게 뭐지? 하는 상황은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전혀 부정적이지 않아요. 문제는 큐레이터들이 와서 그런 말하면 화가 많이 나죠.
당시 평론가나 연구자, 혹은 매거진 아티클을 통해 한길 씨의 작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던 사례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제 작업에 대한 냉정한 비평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뒷담화는 좀 있었던 거 같고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제 작업이 비평할 가치가 없던가, 아니면 도통 모르겠거나. 이 두 가지 경우일 거 같아요. 어느 쪽이 비중이 클지는 모르겠는데…
사운드아트에 대해서는 저도 복합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 전시될 때 공간에 따른 소리의 조형미나 소리가 구현되는 형식(설치, 퍼포먼스, 음원 발매 등)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미술계에서 소리를 직접적으로 다룬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아 업계 관계자마다 받아들이는 편차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이런 생각도 해요. 초기에는 아웃풋 되는 소리에 강박적이었다면, 이제는 소리에 집중을 해서 뭔가를 하면 그 아웃풋이 꼭 소리일 필요는 없다라는… 그렇지만 그거야말로 사운드아트로 불릴만한 충분한 맥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소리를 파악하는 프리즘 같은 렌즈를 통과해야 사운드아트가 될 수 있는. 그 렌즈를 통과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거죠. 사운드 없이 텍스트만 빠져나와도 사운드아트가 될 수 있는. 그 렌즈를 어떻게 개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될 텐데 결국 그 생각을 하려면 소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른 질문입니다. 노이즈 씬에서 활동하신 지 20년 가까이 되셨는데 그동안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음악에 대한 미적 인식의 변화나 젊은 세대 아티스트들의 경향이라든지 체감하시는 것이 있나요?
저희와 관련해서는 별로 느끼는 건 없어요. 근데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나아졌다고 하는 게 관객이 4명 오다가 10명 오고 이런 거긴 한데…(웃음)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근데 그런 부분을 떠나서 어떤 음악적 변화가 있었나 하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 같은 경우는 변화의 조짐이 너무나 하찮게 드러나니까요. 오히려 작업 자체로 누구의 작곡, 누구의 음악이 힘을 가지고 알려지거나 확산되는 게 아니라 기획이 유행을 탄다든가, 부동산이 유행을 탄다든가, 기획자의 활동이 유행을 탄다든가 하더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계속 본질적인 음악에 대한 문제는 거론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닻올림도 상태 씨가 굉장히 잘 이끌어 왔는데 닻올림을 취재하고 연구한 사람들 꽤 있었어요. 인터뷰도 하고요. 문제는 거기에 음악은 없다는 거예요. 공간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방점이 꽂혀있지 음악에 대한 질문은 별로 없더라고요.
대중음악이 아닌 이상 이쪽 음악에 대해 생각하거나 질문할 수 있는 방법들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문화 현상으로서의 기획이나 공간 문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은 음악이나 소리 관련 기획이 앞서 말한 문화사적 맥락의 외연만 넓혀서 작가 수 또는 작업의 수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인상도 받아요. 최근 작업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사적 맥락만을 생각하고 작업은 소비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획과 비평들도 거기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쉽게 파악 가능한 문화 현상의 주도자가 주목을 받고 그 현상의 바탕이 되어주는 음악에 대한 관심은 매우 소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이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조금은 환멸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리의 경우도 문화사 안에서 의미 층위가 변모해온 과정이 있고, 기획자와 비평가들도 그 맥락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과 기획 사이에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다룸으로써 기획의 카테고리나 주제의 범위가 과거보다 어느 정도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기획 이후 어떤 질문이 가능해졌을까를 고민해보면 기존 논의에서 다뤘던 것과 상동성을 갖는 부분을 최근의 문화 현상 안에서 다시 찾고자 하는 시도가 많은 부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도들도 매우 중요하고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질문이 조금은 제한적이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노이지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기존 논의가 중요하게 다뤘던 맥락들(미래주의, 존 케이지, 노이즈의 태생적 속성 등)과 달리 작업 포인트가 다른 곳에 있는 사례도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아티스트들이 소리를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어졌기 때문에 기존 논의만으로는 점점 더 노이지하고 이상해지고 다른 형태로 둔갑하기도 하는 음악들을 다루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악은 저 앞을 달려가고 있으니 이론이 새로운 질문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길 씨 인터뷰인데 제가 말이 길어졌습니다. 다시 한길 씨 이야기로 돌아와서 앞서 끝에 말씀하신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재미있는 이슈가 있었어요. 아마 인문예술잡지 <F> 에서 비인간을 주제로 다뤘던 호였을 거예요. 러시아 혁명 시기에 있었던 아방가르드와 좌파 운동가 중에 지금은 이름이 잘 생각 안 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핵심인물이 한 명 있어요. 역사에 거의 기입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브레히트가 잠깐 어디에서 중요하게 언급을 했나 그럴 거예요. 그 사람의 활동은 공식적인 역사 기록엔 남아 있지 않은데, 혁명 시기 다른 유명한 인물들의 기록에는 언급이 되고 있더라고요. 혁명기 아방가르드나 좌파 문화운동이 벌어졌던 곳에 이 사람이 다 개입돼 있었어요. 건축도 하고, 무대도 만들고, 비평도 하고, 음악도 하고, 글도 쓰고 거의 모든 것에 연루되어 있어요. 여기저기 영향은 다 끼쳐놓고 정작 본인은 기록에서 사라진. 젊은 나이에 숙청을 당했거든요. 그동안 정치적 이유로 이 사람의 저서가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발굴되면서 나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안타깝죠. 꼭 재발굴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실적 조건에 의해서 사라지고 나중에 고고학적 이유에서 다시 발굴되고… 제가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 식의 연구나 글들을요. 고대 미지의 것이 발견됐다..!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다. 이런 걸 좋아해요.(웃음) 궁극적으로는 저도 좀 그렇게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전술적으로 잘 사라질까를 고민하게 돼요.(웃음)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볼게요. 대중음악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계신가요?
많이 받아요. 팝 음악 좋아해요. 근데 사실 팝 음악처럼 참 속없이 뒤섞어 놓은 장르가 없거든요. 팝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 안 해요. 팝 음악 비즈니스에 대해 부정적인 게 있는 거지 팝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요새 다시 힙합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힙합을 좋아했다가 완전 관심을 잃었다가 요새 다시 관심이 가는데 새로운 맥락에서 관심이 가요. 그 맥락이 원래 옛날부터 있었던 건데 제가 잘 몰랐던 것일 수도 있어요. 여전히 랩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힙합에서 리듬을 구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요즘 다시 듣고 있어요.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 같아서요.
노이즈 음악은 진입 장벽이 낮은 면이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미디어 발달에 의해 아티스트가 음악을 제작하는 환경이나 음악을 유통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있었고 악기도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한길 씨도 테크놀로지의 영향에 상당히 노출돼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는 기술 자체에 영향을 받고 있어요. 기술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아요. 애초에 신디사이저에서 테크노가 되는 과정이 제가 테크노를 의식하고 했던 게 아니라 그 기계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려고 하면 그렇게밖에 안 나오겠더라고요. 제가 타자기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분명히 영향은 있었을 거라고 봐요. 왜냐면 음악에서 기술은 대부분 녹음기술을 중심으로 얘기 하잖아요. 원음 재생을 위해 노이즈를 찾아 제거를 해요. 제거하기 위해 소리의 해상도를 높이거든요. 원음을 잘 내려고 해상도를 높였는데 예전에는 몰랐던 노이즈들이 계속 발견되는 거예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노이즈는 안 죽는다는 거죠. 오히려 기술이 발달하면 새로운 노이즈를 발견하게 돼요. 그게 노이즈에서 중요한 맥락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노이즈는 음악용어 이전에 기술용어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노이즈 음악과 테크놀로지가) 관련이 있다고 봐요. 음악 자체에 함몰돼서 생각하기 보다 소리가 왜 생기는 것인가부터 질문을 해보면, 기술이 어떤 소리를 생산하고 그걸 다룰 땐 어떤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돼요.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노이즈 친화적일 수밖에 없고요. 노이즈를 부정하고서는 그런 접근을 하기가 힘들어져요.
조금 전 ‘비인간’을 언급하셨는데 테크놀로지 문제는 이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소리를 인간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전에 한길 씨와 제가 전기(電氣)에 대해 나눴던 대화도 생각해볼 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부분은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비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요. 지배적인 철학이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 거기에서 벗어나 다른 객체들의 존재를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랬을 때 전기의 문제가 새롭게 환기될 거고요. 우리는 소리가 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전류의 흐름을 통해 듣는 이 소리는 뭐고, 빛은 뭐고, 이 빛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고… 이렇게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나가는데, 사실 전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왔다 갔다 흘러 다니는 것뿐이거든요. 이게 저한테는 관점을 뒤집는 계기가 됐어요. 저는 그게 너무 재밌고요.
소리가 상수가 아닌 변수라면 노이즈를 다룰 때도 관점 자체를 달리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연속동사”(2016) 페스티벌에서도 관련된 강연을 기획하셨는데 기획자로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있을까요?
소리는 진동이고 연속체라고 봐요. 그 주제가 “연속동사” 페스티벌의 주제하고도 관련이 있고요. 우리는 보통 명사 ‘소리’라고 쓰잖아요. 그 명사 소리가 정확하게 지시하는 게 무엇일까 하는 거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을 가청주파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박쥐의 경우는 더 높은 데를 듣잖아요. 그럼 박쥐가 듣는 건 뭘까? 하는 거죠. 박쥐가 듣는 건 소리가 아닐까? 이 말을 하고 있는 문장 안에서도 소리를 구사할 때 너무 인간 중심적인 사고밖에 못하는 것 같아요. 박쥐가 듣는 걸 우리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못 듣는데 박쥐는 들어요. 애초에 소리라는 명사가 불완전하고 불명확한데 언어로 ‘소리’라고 규정 되면서 사고의 폭이 확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소리에 대한 일련의 사고 과정들이 노이즈의 매개성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매개에는 여러 가지 결이 있을 텐데, 말씀하신 것처럼 소리를 푸는 과정이 꼭 소리를 통해 보여질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분명히 연결된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 연결이 미학적인 것만으로는 해소가 안 될 거라고 보고요. 그건 새로운 서사를 써야 설명되지 않을까 싶어요. 요새 ‘Theory Fiction’이라 해서 재미있는 게 있더라고요. 다른 서사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는 건데 저도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봤고 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음 “철학 책은 한편으로 매우 특이한 종류의 추리소설이 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상과학 소설이 되어야 한다”라고 들뢰즈가 얘기한 게 있어요. 언어가 정확하게 지시해주는 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서사로 풀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러면 오히려 장르물이 그런 방식에 더 근접하지 않을까 싶어요. 형사 내지는 탐정이 등장해서 미스테리를 풀어간다든지 아니면 과학적인 논증을 펼치려는데 사실 아직 밝혀진 바가 없는 과학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사변적 추론을 하고 그런 서사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좀 흥미롭고요. 정확히 언어로 지시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음악도 단순히 감상이나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나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음악. 그런 음악은 무엇일까?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생각을 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음악.
노이즈에 대한 철학적 사고로 추상적이고 우회적인 실천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질문도 이것과 연관돼 있다고 보는데, 재즈 쪽에서는 자유즉흥을 노이즈라 부르기도 합니다. 노이즈도 뒤에 ‘즉흥’이 형제처럼 따라다니고 있고 아티스트마다 보여주는 즉흥의 방법론도 각각 달라 보입니다. 한길 씨가 생각하는 즉흥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건 아까 기존 음악이 새로운 생각의 가지를 방해한다는 답변과 관련이 있을 거 같아요. 자꾸 자신의 기존 습관이 나오는 거죠. 즉흥음악에서도 그런 게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유명한 연주자들인데 막상 연주하는 걸 보면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습관으로 계속 연주하고 있는… 필요에 의해 그 습관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들이 있어요. 논란의 여지는 많은데 저는 그 비판적인 입장이 좀 이해가 돼요. 즉흥연주 왜 할까라는 거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카탈로그처럼 만들어 놓고 연주할 때 그것을 가져다 쓰는… 잘 훈련된 테크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어떤 분은 그런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유명한 즉흥연주자의 음악은 들으면 참 좋은데 저기서 저 사람의 테크닉을 다 빼고 나면 어디에 저 사람의 음악이 있을까?’ 저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애초에 테크닉이 없기 때문에 테크닉 구사를 못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타자기로 무슨 연주 테크닉을 발휘하겠어요. 그냥 타자를 치는 거죠. 안 치면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요. 일단 이걸 쳐야 음악이 성립되는데 막상 치려고 하면 음악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글’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알고 있던 것들이 하나 둘 깨지게 되더라고요. 그런 시도 자체가 노이즈라고 생각해요. 들리는 것만이 노이즈가 아니라… 기존 매체의 목적과 용도와 룰이 있을 텐데 그것들이 깨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노이즈라고 생각해요. 본래의 용도를 떠나 잡음을 일으키는 거니까요.
어찌 되었든 관습적인 것에 대한 반발, 내지는 도전이 충분히 비관습적일 때 우리는 노이즈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소위 노이즈 음악이라고 했을 때, 또는 즉흥음악이라고 했을 때, 그 지시하는 바가 충분히 노이지 한지, 충분히 즉흥적인지의 문제가 어떤 판단 근거로써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비단 소리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다시 씬에 대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본의 실험음악 씬과 교류할 기회가 많으셨는데 일본과 국내의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비교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한국과 일본이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서울과 도쿄 정도라면 상황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닻올림 같은 공연장에서 하면 닻올림에 오는 만큼 오더라고요. 더 큰 데서 하면 더 많이 오고요. 일반화하긴 힘든데 일본은 일본 대로 상황이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연주자가 연주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조금 더 많다는 정도? 그밖에는 전자즉흥음악이나 노이즈 음악 안에서도 어떤 경향과 입장들의 분리가 서울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큰 틀에서 보면 시장 친화적 접근과 시장 불신형 접근 같은 것도 보이고요. 우리는 아직 그런 차이와 구분 자체가 없는 것 같고요.
씬에서는 실험음악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도 하고 공동의 지식으로도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네트워크가 해외의 아티스트들과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을까요?
이쪽이 워낙 뭐가 없다 보니까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지리적으로) 먼 데까지 갈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한국에 저희밖에 없고 일본에 저희랑 같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사람이 여덟 명 있다고 해봐요. 그러면 그쪽도 평생 그 인원으로는 뭘 해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든 그쪽이든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해요. 그러면서 서로 비슷한 현실을 깨닫고 어려운 처지에 같이 돕고 살자 이렇게 되죠. 그래서 저희끼리 거지들의 네트워크라고 농담하기도 해요.(웃음)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로 실험음악이 씬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고 공동의 지식일까? 그런 질문을 혼자 많이 해요.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최근 들어 많이 느끼고 있는데… 오히려 너무 함께하는 것에 더 큰 가치 부여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듯한 외양과 주장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공동의 지식보다는 실험음악이라는 틀이 누구도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동의 제한체계처럼 보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어떤 음악적 이유나 함께 고민해볼 사유의 이슈 없이 실험음악 씬이라는 이유로 상호 협조해야 한다는 관념이 상징자본1을 향한 욕망 기제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많이 보게되는 것 같아요. 교류하는 것은 참 좋은데 그것이 순수하게 상호 간의 음악적 관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규모가 어떻든 여기 씬이 있다.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서 연주를 해보겠다 정도가 과연 음악적 접근인지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인지 구분이 모호하잖아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상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협조해야 한다가 본질이고 커뮤니케이션이나 공동의 지식은 보기 좋은 명분 같기도 해요. 우리가 실험음악 씬을 통해 실제적인 음악적 질문들과 거기에 상응하는 삶의 태도 같은 것을 보았거나 함께 생각해 볼만한 것을 권유하는 기획을 접해 본 적은 드물다고 생각해요.
씬의 네크워크가 미래에 도래할 예술적 평판이나 지위를 위해 어느 정도 암묵적인 상부상조 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자신의 평판을 고려하지 않는 아티스트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안에서 작동하는 증여 관계에 대해서는 저도 건조한 시선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작은 연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거지들의 네트워크’로 워딩이 바뀌니 웃기기도 하고 앞이 캄캄하기도 하네요.(웃음)
물론 그 중에는 오토모 요시히데2처럼 여건이 좀 다른 특이 케이스가 있긴 해요.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실험음악이 보통은 비주류 음악으로 여겨지고 시장도 작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한편으로 ‘비주류’라는 시각은 대중음악에 기준점을 뒀을 때만 유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이즈도 록이나 전자음악의 형태로 젊은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음악 안에서 나름 주목받아 왔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한길 씨는 주류와 비주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한 번도 제가 주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팝음악 쪽에 몸을 담고 있을 때조차도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계열이라고 생각 했어요. 근데 어느 비평가 분이 저한테 그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이미 주류라고. 예술 쪽으로 영역을 넓게 보면 이미 주류라는 거죠. 좀 깜짝 놀랐어요. 주류의 삶이 이렇게 거지 같은 건가?(웃음) 나 주류라는데 왜 이렇게 거지지. 일반적으로 주류다 하면 얼마나 많이 소비되는가? 이게 가장 일반적인 관념인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저를 주류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주류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연속동사”)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맞는 것 같고… 주류/비주류 개념이 그걸 생각하고 바라보는 사람 안에서 흐르는 덩어리 규모에 따라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거겠죠.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비주류, 언더그라운드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다고 했는데, 소위 비주류 문화라는 이유로 펀딩을 하면서 일부 기획들이 작업의 생산 주체들을 도리어 착취하는 징후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미화된 명분을 통한 상호 착취의 문제요.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장 먼저 예산 감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작가들의 페이나 작품제작비에요. 대형 비엔날레 같은 경우도 비슷한 문제가 있고요.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거기에 맞게 규모를 조정하면서 내용의 충실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봐요. 물론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은 해요. 하지만 복잡한 현실적 이유가 기획의 충실도 보다 더 큰 조건으로 작용하는 행사가 온전한 행사인지 잘 모르겠어요. 행사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기업가 마인드가 무심결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 스스로 질문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제 거의 인터뷰의 끝자락에 왔습니다. 연주하실 때 청취자의 존재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나요?
저는 별로 영향을 안 미치는 것 같아요. 제가 신경을 잘 안 쓰려고 해요. 그리고 청중이 많지 않아서…(웃음) 청중을 더 감흥 시키고 강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건 대중음악이 더 잘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대중음악은 상대할 수가 없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고 작업이 거기에 맞춰서 이뤄지고 있고요. 철저한 계획 하에 딱딱 이루어지잖아요. 그런 전문성과 자본이 바탕이 되는 규모를 우리가 감당할 능력은 아직 없다고 봐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혹시라도 일이 잘 풀려서 갑자기 저작권료가 들어오고 티켓도 비싼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가정했을 때, 그러면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 같아요. 자본이 주는 편안함과 매력에 빠지면 다시 이런 작업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에요. 가능한 욕심을 안 가지려고 애를 많이 써요. 현실적인 문제가 크기는 하지만, 제가 작업에 대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에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려고 해요. 가능하면 뻔한 사회적 미담이 아닌 같이 고민해볼 만한 내용을 던져주는 청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마지막으로 한길 씨가 생각하는 ‘적극적인 청취자’는 어떤 것인가요?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엔 더 신중하게 듣고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소리가 났을 때 이게 음악인가? 이런 식의 정립된 관념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게 뭐지? 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 주체인 거죠. 자기 나름의 추상화도 해보고요. 그거는 적극적으로 들으려고(listening) 할 때 경험되는 거고 그냥 들리는 상태(hearing)일 때는 잘 오지 않는다고 봐요.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들으려 해야 그 존재를 알기 때문에… 근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다가도 엇! 이러면서 눈치 채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무심히 넘기는 사람들도 있고 하잖아요. 그런 차이 아닐까요. 또 한 가지는, 이건 저의 개인적인 편견이라는 전제로 말하면, 행사의 대외적 모양새만 보고 선택하지 않는 청취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특정한 공연이 왜 경험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청취자?

류한길은 현재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 <소시오프리퀀시 (SocioFrequency)>라는 작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소시오프리퀀시를 이용한 앨범 [엔벨롭 디몬(Envelope Demon)]을 발표하기 위해 천천히 작업 중에 있기도 하다. 또, 그는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허구의 생산과 증폭의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 탈고와 편집 과정을 마친 상태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인터뷰는 2016년 9월 10일에 진행되었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만큼 아티스트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을 고려해 류한길과 서면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은 후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이승린 | halcyondrum@naver.com
소리문화연구자. ‘소리에는 위계가 없다’는 믿음을 모토로 듣는 행위와 관련된 문화적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로 참여관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 언어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창작 현장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