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달 마지막 주 금요일, 경리단길 앨리사운드에서 레귤레이션스Regulations라는 이름의 공연이 열린다. 다루는 작업은 일단 ‘Experimental Mixed Media Performance’라고 되어있지만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꼭 이 범위에 한정된 것 같지도 않다.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이 공연들은 규칙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도 혹은 규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인다. 8회 공연이 끝난지 4일째 되던 날인 2017년 4월 4일, 레귤레이션스의 공동 기획자인 김형중과 조정연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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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레귤레이션스라는 공연 시리즈를 어쩌다 시작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조정연: 조금 심심했어요. 저는 원래 디제이고, 따로 즉흥이나 노이즈 작업을 하고는 있었는데 할 기회가 그렇게 많진 않았고요. 그래서 스트레스 안 받고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던 차에 마침 앨리사운드에서 이런 공연을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의외네요. 전 막연히 앨리사운드는 댄서분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알고 있었어요. 사장님이 즉흥이나 노이즈에도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조정연: 원래는 힙합 디제이시죠. 근데 제가 그런 음악도 하는 걸 아신 뒤로 좀 궁금해하셨고, 저도 파티 전에 공연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혼자 하기는 좀 벅차니까 형중이한테도 물어봤고요. 정말 캐주얼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했었어요.
두 분은 어쩌다 같이하게 되셨는지.
김형중: 어렸을 때부터 친구예요. 같이 많이 놀았죠. 저희랑 같이 친한 친구들이 예체능 쪽이 많아서 계속 어울렸는데 그중에서도 저희는 좀 더 방향이 잘 맞았죠.
조정연: 같이 작업한 적도 있긴 한데 보통 형중이는 영상 작업, 저는 사운드 작업을 따로 해왔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뭔가 같이하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서로 바빠서 못하다가 이번엔 딱 기회가 잘 맞은 거죠.

김형중&조정연 – 레귤레이션스 10회 공연, 앨리사운드
이름은 왜 레귤레이션스Regulations인가요? 새로운 규칙을 만들자는 취지? 혹은 깨자는 취지?
조정연: 이름을 원래 정말 못 지어요. 근데 사실 규칙이 없거든요.
김형중: 고민하다가 우리가 노이즈나 뭐 실험적인 작업하고, 정연이는 또 비트나 바운스 타고 이러니까 경계를 깨트리고 싶다는 취지에서. 뭐… 그냥 지었어요.
포스터 보니까 공연 넘버링이 001, 002 이렇게 올라가는데 999회까지 하시려고…
김형중: 절대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조정연: 장기적으로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죠.
김형중: 999회면 몇 살이지.
조정연: 100회만 가도 정말… 근데 포스터 작업은 형중이가 해서요.
김형중: 처음엔 몰랐는데 두세 번째 만들 때 보니까 첫 포스터에 그렇게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요.

포스터 디자인: 김형중
주로 어떤 아티스트들을 섭외하세요?
조정연: 작년까지는 형중이가 섭외를 다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영상에 좀 치우치는 일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좀 받다가(웃음), 올해부터는 밸런스를 맞춰보자 하면서 사운드쪽으로 조금 방향을 바꿨어요. 아직 아는 분들이 많진 않아서 쉽진 않은데 나중엔 퍼포먼스 하는 분들도 같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다양하게 모이고 있는 것 같은데, 전 여러 장르가 섞이는 게 긍정적이라고 봐요. 퍼포먼스하는 분들하고도 같이 해보고 싶어요.
김형중: 원래 그런 퍼포먼스 쪽도 시도하려고 했었어요. 작년까진 영상과 사운드의 비율이 2:1 정도였는데 이번 공연(8회)에서는 두 팀을 제외하고, 다 사운드 하는 분들이었어요. 가장 이상적인 건 여러 장르가 서로 간 영향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진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정연: 근데 사실 매번 게스트 섭외하는 것도 힘든 점이 있어서,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저희가 항상 했었는데 이제는 좀 쉬면서 하려고요.
여태 8번 다 하신 거예요?
조정연: 네. 저는 작년 1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격달로 해오는 스케줄에서 8번 매번 다 참여했어요. 재미있긴 한데, 그래도 좀 더 기획을 열심히 할 수 있으려면 공연을 좀 쉬어가야 할 것 같아요.
김형중: 저는 한 번 빠졌었어요.
레귤레이션스 활동의 목표랄까 그런 게 있나요.
김형중: 전 진짜 없어요. 처음에는 내 작업을 보여주고 싶은, 우리 작업을 공연하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했어요. 근데 요즘은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니까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하나 싶긴 한데 일단 저는 지금에 만족하고, 아직은 목표가 없어요.
조정연: 전 옛날에는 포커스를 확실히 잡고 싶었는데 이제는 좀 달라졌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여러 작업이 섞인 지 오래됐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픈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요. 그게 레귤레이션스의 장점인 것 같아서요. 근데 그러면 공연의 전체적인 하모니라고 할까요? 그런 게 항상 좋을 순 없죠. 그걸 잘 맞추는 게 기획의 역할인 것 같아요. 목표가 있다면 일단 천천히 그 하모니를 다듬어보는 거. 저도 형중이랑 똑같아요.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고.
시작할 때 참고했던 레퍼런스는요? 공연장이든, 공연 시리즈든 아무거나요.
김형중: 레퍼런스를 아주 많이 신경쓴 건 아니었는데 이미 있는 공연들이랑 너무 비슷한 건 싫으니 적당 선을 찾아서 우리만의 스탠스를 유지하자는 얘기는 했었어요.
조정연: 레퍼런스라고 하면 하나를 꼭 정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닻올림의 영향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고요. 전 미국에 있었을 때 클럽이라기엔 뭐하지만 한 공간에서 다양하게 파티도 하고 공연도 하는 걸 봐와서 자연스럽게 ‘공간 있고 스피커 있으면 할 수 있겠네’ 정도로 생각했어요. ‘사장님이 OK 하면 우리도 콜이다’ 이 정도? 그리고 저는 마냥 클럽이랑은 다르게 가고 싶었고, 또 레귤레이션스가 끝나면 바로 프로파간다라는 파티가 이어지니까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일렉트로닉 즉흥음악이나 이상한 테크노도 좀 틀면서요. 계속 그렇게 하고는 있는데… 잘 이어지진 않더라고요. (웃음)
공연 분위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정연: 앉아있는 분위기는 좀 깨고 싶긴 해요. 비트 있는 음악이 나올 땐 사람들이 반응을 좀 더 즉각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가도 또 어떨 땐 녹음하는 걸 생각하면 더 조용했으면 좋겠을 때도 있고. 잘 모르겠어요. 관객들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하겠죠.
김형중: 사람들이 너무 조용하게 있는 건 좀 아쉬울 때도 있어요. 저는 영상도 하니까 좀 번쩍번쩍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
조정연: 근데 우리도 좀 조용해. 그래도 관객분들이 요즘에는 좀 떠들어요. 저번 주에 닻올림의 진상태 씨랑 같이 얘기했는데, 그분들이 초창기에 릴레이(Relay)라는 공연 시리즈 했을 때 딱 이랬다고, 그래서 그때 생각도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8회까지 공연을 하셨는데, 쭉 되돌아봤을 때 그간 좋았던 공연을 하나 꼽자면요.
김형중: 저는 개인적으로 첫 공연이 좋았어요. 예전에 위사(WeSA)에서 했던 작업 <Data. Nature. Anagenesis> 초기 버전을 거기서 처음 보여줬는데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조정연: 저도 첫 공연 아니면 마지막(8회) 공연. 첫 공연 때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근데 다 작업에 대해서는 모르고 온 사람들이에요. 그냥 저희 친구들이 저희가 뭐 한다니까 그냥 온 거죠. 그날 공연도 재밌었는데 저번 8회 공연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이번엔 제가 봤을 때 작업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분들이 꽤 오셨던 것 같아요. 관객의 차이가 좀 있었는데 어떤 게 더 좋았다고는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두 공연의 관객층을 비교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또 중간에 너랑 같이했을 때도 재밌었어. 사람 한 명도 없었을 때.
진짜 한 명도 없었어요?
김형중: 한 명은 왔나? 그때 홍보를 아예 안 했었거든요. 바보 같았던 거죠. 그 전 공연에 사람이 많이 왔었으니까 이번에도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딱 공연 시작되고 보니까 홍보를 안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조정연: 그래서 그 공연도 기억에 남아. 씁쓸하게 저희끼리 했던 기억…
김형중: 그땐 둘이 같이했어요. 누가 펑크내서 저희 것만 했죠.
한 분 오신 것도 신기하네요.
김형중: 그때… 친구였어요.
공연 준비할 때 뭐가 제일 힘드신지.
김형중: 홍보가 제일 어렵죠.
조정연: 사람 모으는 일만 잘되면 아무 걱정 없죠. 홍보만 잘 해결되면 스트레스는 없을 것 같아요.
레귤레이션스 페이스북 페이지에 6회 이전 공연은 기록이 없더라고요. 홈페이지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 같은 것도 없어서 이전 정보는 못 찾았어요.
김형중: 페이스북 계정을 6회 공연 직전에 만들어서 그 전 자료는 페이스북에는 없어요. 곧 홈페이지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조정연: 처음엔 이거저거 다 만들려고 하다가 신경을 좀 못 썼어요. 6회 때 만든 것도 아마 사람들이 안 온걸 보고 위기의식이 생겨서 그때 만들었을 거예요.
김형중: 이전 작업들 아카이빙은 다 있어요. 녹음도 다 해놨고.
공연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두 분이 모든 걸 다하세요?
김형중: 네. 일이 진짜 은근히 많아요.
조정연: 격달로 잡은 이유가 있어요. 재밌자고 한 건데 스트레스받을까 봐. 어차피 날짜도 항상 격달 마지막 주 금요일로 잡혀있는 거고, 매달 하려고 하면 또 힘들 것 같아서요. 두 달이 짧다면 짧지만, 또 길기도 하잖아요. 중간에 충분히 쉴 시간도 있고 각자 할 일도 있으니까.
수익은 나는지…
김형중: 수익이… 났죠. 저희는 아니고.
조정연: 저희는 적자인데, 그래도 게스트들한테 페이를 해드릴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죠. 사실 이번 8회 공연 때 처음으로 입장료를 받았어요. 처음엔 그냥 저희 사비로 드렸는데 게스트가 많아지다 보니까, 다른 데 써야 될 돈도 있어서요. 그래도 장비는 있는걸 써요.
김형중: 근데 그게 진짜 큰 거 같아. 제대로 된 스피커 같은 게 있다는 거.
조정연: 그거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지.
기획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한데요. 공연마다 뭔가 테마를 잡아놓고 시작하나요? 이번엔 여기에 초점을 맞춰보자든가, 누구를 메인으로 가자든가.
조정연: 그런 생각을 하고 하나?
김형중: 애초에 하진 않았어.
조정연: 되게 즉흥적으로 해요.
김형중: 눈치를 좀 봐 가면서 하죠. 정연이가 누굴 섭외하면 저도 그거에 맞추고. 또 제가 누굴 섭외하면 정연이도 거기에 맞추고. 서로 막 뭘 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 안 해도 자연스럽게 맞추는 것 같아요.
친구여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네요.
김형중&조정연: 그럴 수도 있죠.
기획도 하고 아티스트로서 공연도 하면 아무래도 상충되는 지점도 있을 텐데요. 내 공연을 좋은 순서에 넣고 싶은데 내가 기획자니까 밸런스를 봐서 좀 애매한 순서에 그냥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조정연: 그렇죠. 그런 식으로 하죠. 저는 기획이 우선이에요.
김형중: 전 아니에요. (웃음)
조정연: 보니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전 첫 순서로 많이 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중간이나 끝날 때쯤 들어와요. 근데 전 제가 기획하는 공연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요. 저도 연습하고 재밌었으면 좋은 거고, 딴 데 가서 또 하면 되니까. 물론 불러주신다면. 아니면 게스트 섭외 못할 때 또 하면 되고요.
개인 작업에 대한 것도 좀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것들이 두 분 작업에 영향을 줬는지.
조정연: 여기저기서 잡다하게 영향을 받아서 설명을 하는 게 좀 힘든데, 저는 시카고에 있을 때 돌아다니면서 봤던 쇼들의 영향이 제일 컸어요. 조그맣게 즉흥음악 하는 데가 굉장히 많았고… 누군지는 기억도 안 나요. 아무 데나 갔거든요. 그런 데서 영향받았는데 누구 한 명을 딱 꼽기는 좀 힘드네요. 넌 있어?
김형중: 전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봐서 영화 장면이나 사운드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요즘 제 작업 주제가 인공 생명이다 보니까 SF영화나 거기 나온 음악들도 좋아하고요.
두 분 전공이 궁금한데요.
조정연: 사운드 아트 전공했어요. 원래는 비트 찍는 걸 배우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저는 그런 쪽에 한 방에 충격받고 빠진 케이스는 아니고, 좋아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멋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이거 뭐 누가 들어’ 이런 생각을 했었죠. 제가 댄스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서요. 근데 계속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런 것까지 하고 있네요.
김형중: 저는 영상으로 처음 들어갔고, 복수전공으로 철학을 했었어요. 재밌게 공부했었고, 그러다가 미디어 아트 이런 걸 좀 알게 되면서 대학원을 공대로 갔어요.
조정연: 형중이가 미래를 본 거죠.
형중 씨 작업 <Data. Nature. Anagenesis>에서는 리처드 도킨스 말도 샘플링하고 DNA염기서열도 넣고, 레귤레이션스 8회에서 공연한 오디오비주얼 작업 <b.y.s.k>에는 반야심경을 넣으셨더라고요. 주제가 굉장히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김형중: 진짜 쓸데없는 생각이긴 한데 그런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해요. 왜 내가 여기 있는지. 그런 생각에서 빨리 빠져나왔으면 괜찮은데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교는 없지만 종교음악도 많이 들어요. 작가들은 보통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제 얘기보다는 조금 더 전체적인 것, 생명이나 인간이나 이런 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서 비슷한 주제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죠.
작업할 때 특별히 주의하는 점이 있나요?
김형중: 주의요? 신경 쓰이는 부분은 사운드. 제가 사운드를 전공하거나 오래 해왔던 게 아니라서 좀 불안한 건 있죠. 진짜 사운드하는 사람들이 와서 ‘뭐야 저거’ 이럴 수도 있으니까. 저는 사운드만 특별히 되게 깊게 보기보다는, 시각적인 거나 사운드나 다 감각적인 걸로 똑같이 보거든요. 그래서 정연이가 사운드를 하는 만큼 레귤레이션스에 사운드 하는 분들도 꽤 오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좀 쓰이죠. 근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아예 모르고 하다 보니까 과감하게 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어요.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경 쓰이는 부분이에요. 저도 소리 합성도 잘 하고 다양한 소리 쓰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만들 수 있는 소리가 아직은 좀 제한적이에요. 공부 많이 하면서 만들어야죠.
저는 형중 씨가 주로 쓰는 소리랑 작업 주제의 밸런스가 좋다고 느꼈어요. 주제는 엄청 야망차고, 무겁다면 끝도 없이 무거울 주제인데 사운드가 가볍고 속도감 있게 잘 끌고 가주는 것 같았거든요.
김형중: 저는… 무겁게 한 건데? 농담이고요. (웃음) 설치작업 할 때는 개념적인 걸 아무래도 많이 신경 쓰고 생각도 깊게 하게 되는데, 공연으로 하는 건 사람들이 좀 멋있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 작업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한 건 아니었는데, 제가 만든 걸 자꾸 보다 보니까 사람들 반응도 그렇고, 제가 다른 사람들 작업 봐도 그렇고 ‘저게 뭐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주제를 좀 명확하게, 직관적으로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연 씨는 원래 노이즈나 즉흥을 주로 하셨어요?
조정연: 요즘 좀 선호하는 편이에요. 원래는 필드레코딩을 이용한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재밌는 소리 있으면 최대한 아카이빙하고, 변조시켜서 믹스하는 그런 작업을 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직접 소리를 만드는 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좀 변했죠. 예전에 피했던 기계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거든요. 드럼머신, 샘플러, 모듈러 이런 것들을 배제하면서 다른 거로 사운드를 만들었다면, 요즘은 다시 드럼머신을 쓰는데 그걸로 낼 수 없는 소리를 만드는 식이에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정리하자면 필드레코딩 작업을 하다가 어쩌다 시카고에서 하드웨어 해킹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고, 버려진 일렉트로닉을 해킹해서 글리치 소리를 내는 쪽으로 변하다가, 요즘 비트 찍을 때만 쓰던 악기를 다시 쓰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원점으로 돌아갔죠.
소리 변형은 어떤 식으로 하세요?
조정연: 프로그램은 사실 많이 안 써요. 페달 같은 거로 변조를 시켜서 일반적으로 드럼머신이 쓰이는 방법을 피하려고 하는 거죠. 이런 것도 하는 작업 중 하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땐 전 항상 심각한 음악과 유머러스한 음악 사이에서 갈등을 좀 해요. 가끔 형중이 작업이 그런 것처럼 무겁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 그런 걸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너무 심각한 것만 하면 꼴 보기 싫더라고요.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고, 저도 제가 너무 무거운 것만 하다 보면 질려요. 좀 다르게도 가봐야 하고. 결국 유머러스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신선한 소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요. 근데 보통 무겁게 가는 것 같아요. 유머를 별로 찾아볼 수가 없고… 결국에는 ‘아 모르겠어’ 하고 즉흥적으로 하기도 하죠.
8회 레귤레이션스 공연에서 즉흥 하셨을 땐 어떠셨나요? 어느 정도까지 계획되어 있었는지도 궁금했어요.
조정연: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더라고요. 계속 생각에 갇혀버려서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무조건 첫 단추를 잘 끼우려고 해요. 거기서 말려버리면 새로운 과제가 되는 거죠. ‘어떻게 가야 하나’ 하면서 계속하다 보면 좋은 게 나올 때도 있고, 완전 추락할 때도 있고. 사실 제가 쓰는 장비들이 어느 정도까진 예측이 가능한데 확실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플레이할 때 가끔 소심해질 때도 있어요. 그러면 ‘이러면 안 돼’ 하고 과감하게 가다가 또 완전 말아먹고. 글쎄요. 근데 항상 시작을 잘 하면 잘 되더라고요.
디제잉 할 때는요?
조정연: 사람들이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죠. 파티가 우선이에요. 원래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람들 다 내쫓고, 혼자 ‘저 사람들은 이해 못 한다’ 이랬는데 요즘은 생각이 변했어요. 제가 원하는 선 안에서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형중 씨는 즉흥은 별로 안 하시나요?
김형중: 사실 느끼기 어렵긴 하지만 제 작업에도 즉흥적인 부분이 아주 없진 않아요. 일단 시퀀스가 나뉜 상태에서 사운드랑 비주얼이랑 완전 매칭이 되고, 제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비주얼이 완전 바뀌죠. 가끔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유전 알고리즘이라고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쓰는 건데 알아서 이것저것 결합해서 루프를 하나 만들고, 또 다른 걸 만들면서 진화하고 제가 그 안에서 시퀀스 컨트롤도 하고 소리도 집어넣고요. 비주얼이 소리랑 1:1로 딱 매칭되어있어서 뭘 해도 딱딱 맞게 돼요. 미리 이렇게 매칭해놓으면 뒤쪽 영상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죠. 소리만 신경 쓰면 알아서 따라오니까. 물론 엄밀히 말하면 즉흥은 아니에요. 그냥 라이브인 거지. 즉흥이라고 해봤자 소리 좀 더 빼거나 넣거나 속도 조절 정도에요.
8회 공연에서 <b.y.s.k> 할 때 빛이 나오는 후드도 입고 하셨는데 빛도 그렇게 매칭되어 있던 거죠? 딱 앉은자리 위에서 뭔가 피어오르는 듯한 그래픽도 나오던데요.
김형중: 네 맞아요. 사실 이건 <Data. Nature. Anagenesis>의 후속 작업이었고, 포스트 휴먼 같은 걸 의도하고 한 거예요. 조금 다르게 나오긴 했는데.
반야심경도 나오고 빛도 나오고 머리 위로 뭔가 피어오르기까지 해서 약간 득도한 듯한 느낌도 났어요.
김형중: 하하하 아니에요.
빛은 어쩌다 쓰셨는지.
김형중: 원래는 프로젝터로만 썼었는데, 미래의 생명이 꼭 물질이 아니라 데이터나 비물질적인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젝터도 물론 빛이긴 하지만 거기서 나와서 3차원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능력이 되면 홀로그램이나 VR 같은 것도 입혀보려고 해요.
평소엔 뭘 하면서 지내세요?
김형중: 작업하고, 프리랜서로 일도 조금씩 해요. 영상이나 인터랙티브 프로그램 만들고, 강의도 하고요. 제 작업은 규모가 좀 크고 고가 장비들이 필요할 때도 많아서, 작업 만드는 건 주로 레지던시같은 데서 지원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게요. 올해 2월 콘스탄트 밸류(Constant Value)에서 공연하실 땐 거의 천장 전체에 조명을 쫙 달아놓으셨더라고요.
김형중: 네 그랬죠.
조정연: 그런 걸 해야겠냐고 했지만 며칠 동안 가서 하더라고요.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연 씨는요?
조정연: 저는 디제이니까 디깅이 생명이어서 음악을 항상 많이 듣죠. 새로운 음악 찾으면 또 자극받고 너무 좋고. 작업도 혼자 하고 있는데 조만간 EP 하나 낼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계속 아카이빙을 하고 있어요. 이번에 다른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는데, 디엣지(The Edge Seoul)에서 하는 프로젝트 아카이브라고, 디엣지 운영하는 분이 제안해주셔서 시작했어요. 저도 레귤레이션스 하면서 좀 더 사운드에 집중하는 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4월에 처음 시작했고, 일단 매달 하기로 되어있어요. 또 거기가 레코드샵(Clique Record)이기도 하다 보니까 하드웨어를 좀 써서 음악을 할 수 있겠냐는 얘기도 있었고요. 이런 것도 기획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어요. 디제잉은 앨리사운드에서도 하고, 이태원역 근처 클럽 베뉴(Venue) 레지던트 디제이로도 있어요.
9회 레귤레이션스는 어떤 공연이 될까요.
조정연: 다음은 익스페리멘탈 힙합 같은 느낌. 앨리사운드 사장님이랑 그분 친구들이 들어갈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을 어떻게 더 섭외할지는 아직 좀 더 고민 중이에요. 느낌이 잘 맞아야 할 텐데. 어쨌든 이번엔 비트 있는걸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레귤레이션스에서 비트가 있거나 춤출만한 음악은 안 하려고 했는데, 뭔가 ‘이건 안된다’고 막아두면 발전이 없으니까요. 작년 말부터 더 방향을 더 열어두는 식으로 가기로도 했고. 그래서 더 기대하고 있어요.
김형중: 맞아. 다음 공연 은근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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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연 Cho Jung Yeon
서울 태생. 주로 현지 녹음을 이용한 포노그래피 작업과 글리치를 기반으로 한 자유즉흥음악 연주자이다. 최근에는 드럼머신과 샘플러, 믹서 피드백 등을 이용한 노이즈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https://soundcloud.com/chojungyeon
김형중 Hyungjoong Kim
1988년생. 김형중은 실제 DNA 염기서열 데이터를 활용하여 오디오-비주얼 설치 및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미디어 예술가이다.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국제 전자 예술 심포지엄(ISEA), 아티언스, 프로젝트 대전 등 예술과 과학의 융합 전시에 참여해왔으며 서울의 WeSA, Constant Value와 같은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에서도 작품을 선보여왔다.
https://www.hyungjoongkim.com/
신예슬 | shinyeasul@naver.com / http://shinyes.kr
음악학과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음악과 가장 가까운 사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