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장르를 거점으로 하는 동시에 그 사이를 배회하며 다양한 접점을 자유롭게 탐색한다.” 헤테로포니가 발행한 단행본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읽어볼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다양한 접점을 자유롭게 탐색’하려는 시도가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문제의식 하에 네 명의 필자가 모두 참여하는 기획, ‘함께 듣고 쓰기’를 시작한다. 한 명의 필자가 하나의 리뷰 대상을 추천하면, 네 명의 필자가 각자 짧은 리뷰를 작성해 합동으로 공개하는 방식이다. 리뷰의 대상은 공연, 음반, 전시 등 음악과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같은 공연이더라도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모여 누군가와 ‘함께 감상하는 것’은 감상의 태도와 내용을 결정할 정도로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전통음악 공연을 누군가와 함께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공연장에서 나는 늘 혼자였고, 종종 공연 시작 전과 후에 지인이나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항상 다른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 전통음악이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아카데미에서 습득하게 되는 전통음악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는 날 것 그대로의 새로운 시선이 절실했다. 보통 진입장벽이 낮다고 여겨지는 ‘창작국악(음악)’ 공연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헤테로포니 필진들에게 이러한 고려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래는 3월 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열린 국립국악원 정악단 기획공연 《정악, 깊이 듣기》를 관람한 후 각자의 짧은 감상을 엮은 타래이다. (성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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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악은 누구에게 음악을 들려주는가
무정한 표정, 아래로 향하는 시선, 최소화된 몸짓. 시각적 몰입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큼지막한 스크린에 포착되는 정악단의 모습은 시종일관 분명했다. 한 연주자의 얼굴이 화면에 잡혀도 잠시 동공이 흔들릴 뿐, 그 단단한 표정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본령〉에서 〈보허자〉로, 〈수제천〉으로, 〈자진한잎〉으로, 〈수룡음〉으로, 〈영산회상〉으로 이어지는 그 긴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목격할 수 있던 것 중 하나는 연주자가 자신의 신체를 다루는 태도였다.
추측컨대 정악에는 ‘보여지는 것’에 대한 어떤 규범들이 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표정을 짓지 않는다. 객석을 쳐다보지 않는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자신의 연주에 마냥 도취하지 않는다. 매무새를 정돈하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소리를 위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지배층이 대다수였을 청자와의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규범에 가까워 보였다. 소리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몸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오랜 시간 훈련을 거쳐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부단한 노력을 거쳐 만들어졌을 그 절제된 움직임들은 음악과 매끄럽게 호응하기도 했으나 때로 소리나 음악과는 무관해보였고, 몸의 반응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날 연주된 모든 음악이 궁중음악은 아니었고 정악단 또한 자신들이 다루는 음악을 “궁중음악, 제례악, 연례악, 군례악과 선비 풍류의 전통음악”으로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의 미동 없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는 왕과 사대부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공연 팜플렛의 「모시는 글」에서 “그동안 정악을 일반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여” 공연을 이러저러하게 꾸렸다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정악, 깊이 듣기》가 모시려 한 분들은 정악을 가까이에서 접하지 못했던 일반 사람들일 테다. 바로 그 일반 사람들의 입장으로 공연장을 찾은 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왕에게 ‘보여지는’ 것 같은 정악단을 바라보며 이 무대를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현실의 내 입장에서 들을지, 아니면 ‘정악의 청자’로 상정된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내려다보았을 옛 청자들에게 상상적으로나마 감정이입을 해봐야 할지 어쩐지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정악의 모습이 그들이 고수하고자 하는 소위 ‘전통의 원형’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정악이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혹시 옛 청자와의 특별한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정악은 지금의 눈과 귀로 정악을 살펴 듣는 관객들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될까? 그렇다면 미래의 정악은 어떤 모습일까?
소리(라는 교란자)를 찾아서
국립국악원의 국악사전에서는 정악(正樂)에 대해 ‘바르고 정대한 음악’이란 정의를 내리고 있다. 물론 그 명칭은 절대적 바름과 정대함을 내재하게 만드는 주문이라기보단 민간 전통음악의 대립항으로서의 정규적 성격을 띠게 만들기 위한 의도가 더 많이 투영되었겠지만, 최소한 《정악, 깊이 듣기》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러한 상대적 맥락을 넘어 바름과 정대함이란 이데아에 대한 욕망이 어떤 식으로든 구현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근엄하고 느리게 부유하는 음, 박자를 맞춘다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비트, 화려하지만 동시에 불편해 보이는 연주자들의 전통 복식(그들은 연주하기 위해 앉으며 끊임없이 옷자락을 정돈했다), 엄격하게 편성된 배치와 절도 있는 입·퇴장 등의 모든 요소를 통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시도가 소리라는 침입자에 의해 끊임없이 교란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제천〉이나 〈영산회상〉에서 향피리와 세피리가 곡 전체를 신경질적으로 갈라지는 소리로 끊임없이 메워 나가는 순간, 〈보허자〉와 〈수제천〉에서 저음역대를 묵묵하게 받치면서 어느 순간 청자의 인식 범위에 진입하는 해금과 아쟁, 마치 타악기적인 공격성을 지닌 타격음으로 〈자진한잎〉의 한 축을 거칠게 이끌어 나가는 거문고 소리처럼. 결코 끊어지지 않을 듯이 정제된 음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악곡의 구조, 소리의 교차 및 분화를 노렸다기보다는 증폭의 효과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단일한 협주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을 구성하는 몇몇 소리의 분자들은 바름과 정대함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그 존재감을 있는 힘껏 드러낸다.
이것이 서구 클래식을 포함해 음악의 형식미를 준수하는 전통음악에서 드러나는 보편적 교란이라고 말하기에는 나 자신이 해당 음악들에 대해 지닌 지식이 지나치게 일천하다. 악곡이라는 형식적 틀을 힘차게 뚫고 나오는 소리라는 존재에 대해 ‘생명력’ 같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이러한 경험을 치장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낯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다만 전통음악의 자장 속에서도 가장 고정된 형식미를 추구하는(혹은 그러한 형식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정악이라는 장르가 역으로 국악기가 지닌 소리, 다른 악기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고유한 결을 지닌 교란에 대해 보다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는 건 명확해 보인다. 그것은 국악기의 고유한 소리를 ‘교란’이 아닌 ‘재료’로서 자신의 음악에 통합시키는 많은 대중음악이 들려줄 수 없는 종류의 신선함이다.
p.s. 형식에 대해서 걸리는 부분 중 하나는 악기별로 성별이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는 구성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었다. 특히 대금과 피리의 경우 여성 연주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성별이 악기 연주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변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온전히 정악이라는 오래된 전통에서 비롯된 젠더 분리의 구성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개선될 수 있는 지점일 테니 (과거에는 남성들만이 정악을 연주할 수 있었으리라) 그 속도가 더 빨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콘서트홀에서 만난 자연의 소리
일본 에도시대 회화의 한 양식인 우키요에(浮世絵) 에는 〈도칸산의 벌레 소리 듣기(道灌山蟲聽きの圖)〉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도칸산에서 달빛을 받으며 가을철 벌레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자연이 선사하는 연주회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대의 장소를 잘 보여준다. 일본만의 특수한 사례인 것 같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우리나라의 풍경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공기 좋고 맑은 물 흐르는 곳에서 새소리, 폭포수 소리를 벗 삼아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시를 읊던 옛 선비들의 모습. 그래서일까, 전통음악과 자연의 소리는 마트의 여름 과일 코너에 틀어놓은 매미 소리와 수박의 조합만큼이나 꽤 자연스러운 만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이 선사하는 연주회’가 아닌 도심 속에 위치한 한 콘서트홀에서 들은 자연의 소리는 어딘지 낯설게 느껴진다.
2019년 3월 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된 《정악, 깊이 듣기》에서는 곡과 곡 사이를 쉬어가는 짧은 시간마다 새소리나 개울물 소리 같은 단조롭고 청량한 자연의 소리를 흘려보냈다. 여기서 자연의 소리는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 연주자에게 다음 연주를 위한 재정비 시간을 확보해주고, 청중에겐 머리를 환기하며 다음 곡을 들을 준비를 할 시간을 제공하는 기능적 역할이 더 강조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자연의 소리가 흐르는 동안 연주자들은 차분히 걸어 나와 자리를 잡은 뒤 악기를 정비하며 수시로 옷매무새를 만졌고, 청중들은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거나 혹은 앉은 자리에서 각자 무언가를 했다. 이런 기능적인 면만 보면 자연의 소리는 공연장 내에서 배경음악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도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음악과 외부 소음을 철저히 분리하며 발전한 콘서트홀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예악당 같은 오케스트라 기반의 공연장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꽤 이질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17세기 서구에서는 특권층을 중심으로 실내 생활이 발달하면서 음악을 자택에서 개인 소유로 영위했는데, 박수 소리처럼 관례화되어 있는 소리 이외에 외부 소음이 침투하는 것은 그들의 음악문화에 허락되지 않았다. 유리창을 경계로 실내와 외부 사이에 소리의 울타리를 지었던 인식의 역사는 이후로 소리에 배제의 논리와 위계를 적용하는 지배문화로 강화되었고, 여기에 ‘공간’에 대한 관람비를 지불하는 행위가 점차 정례화되면서 콘서트홀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1
이런 콘서트홀 문화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정악, 깊이 듣기》는 음향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마이크 사용을 최소화하고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혀 악기 고유의 소리를 전달하는 ‘자연음향’을 지향했는데, 아쉽게도 필자는 연주자와의 거리가 1미터가 안 되는 작은 공연장에서의 경험이 더 익숙한 탓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예악당에서는 자연음향의 효과가 잘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수룡음〉에서 생황 소리가 유독 작게 울려 퍼질 때는 자동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것이 악기 고유의 ‘자연적 소리’를 들으려 애쓴 것이었다면 이 기획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나 곡과 곡 사이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었던 경험은 결과적으로 고급문화로서 콘서트홀의 문화적 위상과 소리의 위계질서 재생산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짧은 필자에게 《정악, 깊이 듣기》는 실제로 깊이 듣는 시간보다 정악에 진입해보려 부단히 애썼던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후기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본 공연보다 이런 외적인 요소들에 더 이목이 집중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주석
정악의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늘날 정악(正樂)은 궁중음악과 더불어 가곡, 영산회상 등과 같은 일부 민간음악을 지칭하는 음악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궁중에서 연행된 지배층의 음악, 민속악의 대립항, 중인계층이 향유하던 음악, 이왕직아악부 출신 음악가들에 의해 재편된 음악 등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이 지면에서 정악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모두 논술하기에는 한계가 있겠다. 정악은 음악의 구조나 성격에 따라 엄밀하게 구획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 과정들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수합된 ‘개념’이다. 정악이 권위를 가지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각도로 재고해볼 수 있다.
매해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기획공연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형식적인 변주를 선보여 왔다. 정악으로 명명되는 악곡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몇몇 악곡을 중심으로 악기 편성 혹은 배치에 변화를 주어 음향적 생경함을 의도하거나 긴 악곡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안전한 실험이 꽤 오랜 시간 누적되었다. 정악단의 이와 같은 행보는 정악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여러 시도의 가장 큰 동력은 ‘음향’에 대한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 전통음악 연주에 있어 프로시니엄 무대2가 가진 구조와 음향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정악단은 마이크 사용을 배제하면서 음악의 다이내믹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극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했다. 〈수제천〉은 음량이 작은 해금을 전면으로 두드러지게 배치함으로써, 〈영산회상〉은 세악 편성을 합악 편성으로 바꿈으로써 각 악곡이 가지고 있는 입체감을 큰 무대공간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하였다. 반면 해금, 아쟁 편성에 남창을 약식으로 갖춘 〈보허자〉나 대금과 거문고만을 사용한 〈자진한잎〉, 아쟁을 추가했던 〈수룡음〉은 ‘듣기 좋다’는 감각을 주조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각각의 악기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으며 재편된 악곡 역시 치밀하지 않고 성기게 느껴졌다.
기존 악곡의 악기 편성을 달리 하여 긍정적인 의미의 생경함을 도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원곡이 그 자체로 완벽하게 정제되어 있어 그 어떠한 빈틈도 쉽사리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악기는 제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원곡에 대한 주석 작업은 대체로 불완전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닌 음악 유산을 해부하고 재조립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경험이며 정악단의 기획의도와 일치한다.
국립국악원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국악은 새로울 필요가 없다. 낡고 진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민족주의적 기치나 음악적 특수성을 강박적으로 소환하여 존립근거를 해명할 필요도 없다. 음악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의 위계는 음악 내부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정량적인 피치로 환원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탈하는 완강함을, 어느 하나로 쉽사리 귀결되지 않는 불연속적인 떨림을, 서양음악이 제시한 이상적인 영역 바깥에서 비로소 오롯하게 존재하는 이 음악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조금 더 사랑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