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노이즈 음악 씬(scene)은 매우 작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속해있다. 그중엔 노이즈 음악에 애정을 갖고 객관적인 비평이 가능할 만큼 깊이 있는 청취를 하는 사람도 있다. 장정우는 내가 만난 청취자들 중에서 가장 보기 드문 하시 노이즈(harsh noise) 청취자로, 스스로 고수하는 음악 취향이 또렷하고 노이즈 음악의 흐름과 경향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 가능할 만큼 음악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하시 노이즈를 왜 선호하는지, 하시 노이즈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더 나아가 직접 노이즈 음악을 시도하거나 연주를 해보기까지 어떤 청취의 여정을 걸어왔는지 묻고 싶었고 2016년에 처음으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인터뷰는 당시의 대화를 토대로 서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용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학교에 다니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통 일과가 어떻게 진행되나요?

요즘은 보통 낮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일정 마치면 밤까지 공부하거나 아니면 웹서핑을 하기도 하고, 밤에는 주로 게임을 합니다. 비루한 삶이네요. (웃음)

평소에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노이즈 관련 인터뷰니까 왠지 노이즈 음악을 듣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노이즈도 듣고, 펑크도 듣고, 최근에는 레게도 듣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music)도 많이 듣습니다. 근데 인더스트리얼은 노이즈 음악과 형제 같은 장르다 보니 굳이 분류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해요.

평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노이즈 음악을 즐기시나요? 아니면 집중해서 들을 시간을 따로 마련하시는 편인가요?

따로 시간 할애를 해서 듣지는 않고 그냥 평소에 이동하거나 공부하면서 많이 듣고 있어요. 그래서 지하철 타고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좀 신나기도 해요. 평소에는 가만히 집중해서 듣거나 그러질 못하는데 이동할 때는 노이즈를 오래 들을 수 있거든요. 굳이 이동 시간 동안 뭔가 다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 받아도 되고요. 가사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고 해서 공부할 때 듣기도 아주 좋습니다.

노이즈 음악하면 1차적으로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노이즈 음악이라 하면 아무래도 메르츠보우(Merzbow), 마손나(Masonna), 히조카이단(Hijokaidan), C.C.C.C., 인캐패시턴츠(Incapacitants), 페인 저크(Pain Jerk), K2 등으로 대표되는 자파노이즈(japanoise) 쪽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뭔가 표준적인 모델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파노이즈하면 굉음이 떠오르기도, 조용하고 침묵에 가까운 소리가 연상되기도, 또 노이즈 아이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자파노이즈도 스펙트럼이 다양할 텐데 정우 씨의 취향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조용하고 침묵에 가까운 소리보단 자글자글한 굉음에 가까운 하시 노이즈 쪽을 먼저 접했어요. 지금 듣고 있는 노이즈도 넓게 봤을 땐 모두 하시 노이즈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고요. 노이즈라는 용어는 정말 다양한 것들을 가리키지만 제가 노이즈를 듣는다고 했을 때는 주로 하시 노이즈를 말합니다.

하시 노이즈는 어떤 음악인가요? 소위 말하는 큰 음악, 센 음악이라는 것 외에 어떤 식으로 이 음악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외부인에게 설명한다고 하면 고장 난 라디오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굳이 시간을 들여 만들고, 나아가 청취의 대상으로 소비해온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취의 대상으로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역사라는 말씀이 흥미롭네요. 좀 더 미시적으로 한 개인이 노이즈를 듣기까지 어떤 청취의 역사를 이어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정우 씨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음악을 접하게 되었나요?

펑크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왔습니다. MITB(맨 이즈 더 바스터드, Man Is The Bastard)라는 미국 밴드가 있어요. 그 밴드에 노이즈 멤버 한 명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만들던 소리가 일종의 새소리 같은 거예요. 그런 소리가 MITB 음악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어요. MITB의 멤버들이 ‘바스터드 노이즈(Bastard Noise)’라고 해서 아예 노이즈만 중점적으로 하는 별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런 경로를 통해 펑크를 듣다가 노이즈를 조금씩 듣게 된 것 같아요. MITB 같은 음악을 파워바이올런스(Powerviolence)라고 해요. 한국어로 하면 ‘힘 폭력’이겠네요. (웃음) 정말 부끄러운 작명이긴 한데… 어쨌든 이름은 이름이니까요. (웃음)

처음 듣는 장르네요. 힘 폭력. (웃음)

파워 바이올런스에서 MITB 이후로 노이즈를 음악에 도입하는 전통이 좀 생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MITB뿐만 아니라 MITB에 영향을 받은 많은 밴드들도 노이즈 멤버를 둔다거나 음악 중간 중간에 그런 소리들을 넣기도 했죠. 서프레션(Suppression), 아파트먼트 213(Apartment 213), GASP, 로커스트(The Locust)같이 파워 바이올런스 2세대라고 할만한 밴드들 들어보시면 모두 중간 중간에 이상한 소리들이 들어갑니다. 좀 더 최근에는 엔들리스 블라케이드(The Endless Blockade)라는 그룹도 있었고요. 이 팀도 파워 바이올런스 그룹인데 베이스 치시는 분(앤디 놀런 Andy Nolan)이 노이즈를 많이 들으셔서 그런지 하드코어 펑크/메탈에 노이즈를 결합할 방법을 가지고 실험을 많이 했어요. 슬로건(Slogun)이나 리타(The Rita) 같은 본격 노이즈 뮤지션들과도 협업을 했었고요. 이런 음악들을 조금씩 찾아 들으며 하시 노이즈에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들었던 하시 노이즈를 기억하시나요?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순수하게 노이즈라고 할만한 음반을 처음 들은 건 바스터드 노이즈와 메르츠보우의 스플릿 앨범이었던 것 같습니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사실 이 음반의 수록곡들에는 좀 시큰둥했었는데, 나중에 메르츠보우가 일본의 노이즈코어 밴드 고어 비욘드 네크롭시(Gore Beyond Necropsy)와 협업한 [Rectal Anarchy]라는 음반을 듣고 처음으로 노이즈도 영 못 들어줄 음악은 아니란 걸 깨달은 거 같아요. 지금 찾아보니 언급한 두 음반이 같은 레이블(릴리즈 레코드 Release Records)에서 나왔네요. 릴리즈 레코드는 유명 메탈 레이블인 릴랩스(Relapse)의 서브 레이블인데요, 90년대에 펑크나 메탈을 경유해서 노이즈를 듣게 된 분들은 여기를 간 경우가 많았던 거 같아요.

 

Merzbow+Gore Beyond Necropsy, “Punks Not Dead Kennedys Rectal Anarchy” (1997)

 

음반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사실 저는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별다른 리듬도 없고, 구조도 없고, 그렇다고 막 공격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지금도 MITB 음반에서 중간에 노이즈가 나오면 건너뛰고 듣는다든지 이런 분들이 있어요. 쓸데없는 필러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도 한동안 그랬었고요. (웃음)

그런데 어쩌다 좋아하게 되었나요?

아까 말씀드린 엔들리스 블라케이드의 베이시스트가 노이즈 음악의 고전들을 추려서 블로그에 올려둔 게 있었는데 그런 걸 읽고 이것저것 찾아 듣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Rectal Anarchy] 앨범처럼 보컬이 있는 형태의 노이즈를 더 좋아했어요. 그쪽이 덜 지루했거든요. 펑크와 친밀한 부분도 있었고요. 제가 기존에 듣던 음악/음악가들과 노이즈 씬의 접점을 이런 방식으로 찾아 나가면서 청취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던 거 같아요.

하시 노이즈의 어떤 면을 좋아하세요? 제 경우는 폭우 속에 갇힌 기분이 들어서 좋기도 하고, 진동이 몸에 전해지는 느낌도 좋은데 정우 씨는 어떤가요?

일단 몸을 울리는 큰 소리가 주는 쾌감이 있는 거 같아요. 하시 노이즈를 들을 땐 뭔가 거대한 힘에 압도되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소음성 난청이 생겼어요.

SNS 프로필에 소음만이 날 구제해큰 잡음이 진짜 조아!!”라고 써놓기도 하셨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큰 소리가 왜 좋을까요?

지금은 없어져서 아쉽지만 오대리 님의 오래된 트위터 계정에 있던 트윗을 베껴온 것이었어요. ‘큰 잡음’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오대리 님의 트윗이 웃겨서 가져왔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웃기고 좋은 거 같습니다.

노이즈 음악에서 공간은 중요한 문제이고 그건 하시 노이즈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어떤가요?

하시 노이즈는 어쩔 수 없이 소리가 크게 연주되는 걸 요구해요. 그래서 그런 식의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게 없으면 경험이 만족스럽게 완성되기 어렵죠. 근데 저도 그런 만족스러운 경험은 몇 번 없었어요. 어쨌든 시설이 좋고 방음 처리도 잘 된 환경이 중요하다고 봐요. 특히 페달 피드백뿐만 아니라 마이크 피드백 같은 걸 쓰면 소리가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거든요. 2012년 여름에 한예종에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이 기획한 홍철기 씨의 노이즈 특강이 열렸어요. 그때 홍철기 씨가 마이크 피드백을 직접 만들어 보여주시면서 공간과 노이즈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마찬가지일 텐데 기본적으로 소리는 공간을 타고 울리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공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퍼포먼스보다도 순수한 청각적 경험에 가까워지는 일이긴 한데… 그런 공간을 제공해주는 자리가 사실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아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악에는 리듬, 멜로디, 화성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노이즈 음악에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저는 노이즈 음악에 두 가지 축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즉흥성’이라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재즈 쪽의 즉흥성과 이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특정 악기나 피드백을 내지 않아도, 기타를 가지고 프리 재즈의 극단에서 즉흥연주를 하시는 분들을 보고 노이즈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측면이 있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이건 제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쪽이기도 한데, ‘질감’이라는 측면이 있어요. 사실 노이즈뿐만 아니라 현대음악, 어쩌면 모든 음악이 질감에 기대고 있죠. 하지만 저는 노이즈는 다른 요소들을 최대한 지우고 그 질감만 가지고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한텐 이 질감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질감들에 대한 어떤 소비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소리의 질감은 순간적이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서 느낀 것을 말로 옮길 때의 어려움을 매번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 씨가 선호하시는 그 질감에 대해 한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음, 저도 표현하기 참 힘든데요… 노이즈 팬진을 몇 개 사서 읽은 적이 있어요. 거기서 평론가들, 물론 그 평론가들이 노이즈를 즐기는 분들이고 그래서 팬진이기도 한 건데 거기서 ‘크런치(crunchy)하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특정 종류의 노이즈를 묘사할 때 바삭거리는 소리, 바삭바삭한 소리라고 묘사하는 거죠. 뭔가 표현하기 참 어렵네요. (웃음) 이거랑 비슷하게 저는 좋은 노이즈를 들을 때는 ‘맛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노이즈 음반을 리뷰할 때 미각적인 유비를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미각적 표현을 빌려 질감을 설명할 수도 있겠어요. 제가 근래에 읽은 어떤 하시 노이즈 음반 소개글에도 ‘crumble’, ‘crunch’와 같은 표현이 있더라고요. 정우 씨가 보신 그 팬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스페셜 인터레스츠 (Special Interests)>라는 핀란드 사람이 만드는 잡지인데, 노이즈, 앰비언트, 인더스트리얼 등을 다루고 있어요. 뮤지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고 아트웍도 있고, 뒤에는 그 어디에도 실리지 않는 리뷰가 실려 있고요. 팬진의 소중함을 깨달은 건 노이즈를 들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죠.

말씀해주신 두 가지 요소 외에, 외적인 부분에서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이를테면 제스처가 이 음악에 대해 말해주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시 노이즈는 리듬이 없는 것도 많잖아요. 제 경우는 리듬이 없어도 나름의 기준에서 리듬을 탈 때도 있고, 또 매우 큰 소리일 경우에는 어차피 그 소리에 다 묻힐 테니 마음 놓고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정우 씨는 어떤가요?

제스처는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게 궁금한 부분이 있거든요. 노이즈를 들을 때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어요. 록 음악은 머리를 흔든다든지 슬램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음악인데 노이즈는… 물론 영상을 찾다 보면 노이즈를 들으면서 슬램을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근데 그 모양새가 좀 웃겨요. (웃음) 리듬이란 게 명확하지 않으니까요. 차라리 인더스트리얼 쪽 노이즈는 비트가 있으니까 그런 식의 제스처가 자연스러운데 하시 노이즈는 비트가 없다 보니 팔을 흔드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그 정도로 반응을 하고 있어요.

날씨나 공연장의 분위기, 혹은 누구와 함께 듣는가처럼 환경적인 요인에서도 받는 영향이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제가 원하는 노이즈를 하는 분들이 많지 않고 제가 경험도 많지 않다 보니까 환경적 요인에 대해 말하기가 쉽진 않은 거 같아요. 근데 이런 요소는 좋아해요. 이건 노이즈뿐만 아니라 좀 시끄러운 음악을 보러 공연장에 가면 자주 있는 일인데, 앰프가 잘 견디지 못하고 약간 탈 때가 있거든요. 그 앰프 타는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를 좋아해요. (웃음) 연기는 안 나도 그냥 앰프 타는 냄새요. 합주실에 가서 노이즈를 할 때도 그런 냄새가 날 때가 있거든요. 물론 제가 직접 연주의 주체가 될 때는 그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죠. 왜냐하면 앰프가 고장 날 수도 있고 그럼 제가 물어드려야 하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저는 타는 냄새가 좋아요. 저한텐 청각적 즐거움을 상징하는 냄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조금 전에 언급하신 것처럼 재즈에서는 즉흥연주를 노이즈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쪽에는 관심이 없으신가요?

저는 즉흥연주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저는 장르로서 하시 노이즈에 관심이 있고 우발성을 내세우는 음악들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홍철기 씨 같은 경우는 턴테이블로 즉흥연주를 하시면서 동시에 하시 노이즈에 기반을 두신 게 있어서 그런 사례를 생각하면 딱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정확히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 그 부분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예술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거나 즉흥연주를 하시는 분들이 하는 노이즈와 장르로서 하시 노이즈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분명 겹치는 역사가 있지만, 어쨌든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저는 좀 더 펑크 같은 장르 음악에 친밀함을 느껴요. 제가 노이즈를 찾아 들을 때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서 좀 더 공격적인 소리를 만드는 음악가들을 찾는 거니까요.

그럼 닻올림 연주회도 정우 씨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겠군요.

맞아요. 사실 저는 닻올림 연주회에 가보지 못했어요. 근데 2013년 〈닻올림픽(dotolimpic)〉 때 스태프로 일한 적은 있어요. 그 경험도 굉장히 재밌었고 즐거웠는데 아무래도 제가 듣는 노이즈와는 전반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 같아 갈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웃음)

조금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노이즈 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이 있는데, 이 양극단에 있는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노이즈도 결국 어떤 식의 질감을 추구하던 대중음악에서 나온 거라고 봐요. 저는 하시 노이즈의 역사를 생각하는 건데, 디스토션(distortion) 페달을 사용했던 역사가 있어요. 이 디스토션 페달이라는 게 쇳소리가 나는 페달이에요. 전통적으로 ‘음악적인’ 소리는 전혀 아닌 거죠. 그런 디스토션을 건 소리의 질감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데, 노이즈를 찾아 듣는 게 디스토션을 이용한 소리의 조형을 좋아하는 정서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특정 종류의, 보통은 음악적이라고 부르지 않는 특정한 질감을 추구해온 역사의 끝에 노이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어떤 음악도 질감에 대한 탐구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노이즈와 대중음악을 대립 구도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즈 음악이 전체 음악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국은 잘 모르겠는데 일본의 자파노이즈는 분명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원조 자파노이즈로 분류되는 그룹들이 이미 80년대부터 활동했었잖아요. 그 이후의 일본 록 음악의 역사를 보면 굉장히 전통적인 음악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노이즈를 말도 안 되는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밴드들도 있고요. 물론 그걸 모두 자파노이즈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전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게 어느 정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고요. 일본 펑크음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쪽도 8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기타의 디스토션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걸 ‘규슈 노이즈-코어(kyushu noise-core)’ 혹은 ‘노이즈 펑크’라 부르는데 저는 그 기타 소리를 ‘매미 소리’라고 묘사하곤 해요. 이미 리프도 다 뭉개져서 ‘취익-’ 소리가 나고 멜로디 전개는 베이스가 하는, 이런 구조의 시끄러운 음악이에요. 이쪽이 저쪽에 영향을 줘서 무언가가 나왔다 딱 이렇게 말하긴 힘들어도, 그런 식으로 시끄러운 소리의 수용과 질감에 대한 미학이 만들어낸 어떤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State Children, [bomb shelter for money making!] (1985)

 

주로 어떤 방법으로 음악을 들으시나요? 음반/음원을 구매한다든지, 동영상, 혹은 라이브 공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쪽 음악은 카세트나 LP 중에서 7인치 사이즈 이런 것이 소량으로 발매되거든요. 근데 그걸 제때 제때 구입하려면 부지런해야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어려워서 보통 소울식(Soulseek) 등을 통해 다운을 받아 듣는 편입니다.

공연장에서도 자주 뵈었던 것 같은데 라이브도 많이 보시는 편인가요?

그래도 2주에 한 번은 보러 가는 것 같아요.

주로 어디로 가세요?

문래동에 GBN이라는 곳이 있어요. 앞서 언급한 고어 비욘드 네크롭시라는 밴드에서 이니셜을 따온 장소입니다. 예전에는 스페이스 문(Space MOON)이라는 공간이었어요. 요즘 펑크 공연은 거기서 많이 하더라고요.

2018년에는 무대륙에서 공연도 하셨습니다. 청취자가 음악을 직접 시도하는 사례는 늘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우 씨가 하는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요?

제가 이펙터 페달로 만드는 피드백 소리를 좋아해서요. 피드백은 맨 처음 페달에 달린 인풋과 맨 마지막 페달에 달린 아웃풋이 한 바퀴 돌도록 만들어 소리가 그 안에서 돌도록 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만들어지는 건데, 특히 퍼즈 페달에서 나는 소리를 좋아해요. 자글자글하면서 또 촘촘한 소리들을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제가 비슷하게 직접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웃음)

청취자로서 듣기만 하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노이즈가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야기도 있죠. 사실 노이즈를 두고 가장 쉽게 제기할 수 있는 비판 아닌 비판이 ‘이건 나도 하겠다’라는 거잖아요. 근데 막상 제가 해보려고 하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웃음) 제가 원하는 종류의 음악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만큼 딱딱딱 안 나오더라고요. 또 장비가 있어야 이런저런 실험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금전적인 문제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악기에 대한 훈련도 전혀 안 되어있어서 막히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걸 가이드해주거나 정립된 정보를 줄 사람이 좀 필요했는데 그런 정보도 사실 찾기가 힘들어서요… 근데 그거는 참조할 수 있었어요. 유튜브에 검색하면 기타리스트들이 찍어놓은 이펙터 페달 리뷰 영상이 많이 나와요. 그런 걸 보면서 페달로 피드백을 만들면 어떤 소리가 날까 추측하곤 했었어요. 그래도 (피드백으로) 돌려보기 전까지는 어떤 소리가 날지 알 수 없고, 또 페달 간 조합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날 텐데 제가 가지고 있는 세트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지 알 수가 없어서 어려움이 컸습니다. 사실 실험은 무제한적으로 해볼 수 있는 거겠지만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더 미로에 빠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보다 몇 년 더 앞선 2015년에는 코지 타노(MSBR) 음감회를 기획하시기도 했습니다. 다소유(DASOYOU)에서 진행이 됐었죠. 어떤 계기로 기획하신 건가요?

제가 코지 타노(Koji Tano, 田野幸治)를 좋아하는데 그분이 2005년에 돌아가셨어요. 2015년에 10주년 기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서 반쯤은 장난삼아 진행하게 됐죠. 10주기인데 팬으로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심지어 일본에서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거기는 실제 공간(DOMMUNE)이기도 한데, 코지 타노 10주기 헌사 이벤트를 하고 온라인으로 방송도 했더라고요. 제가 코지 타노를 워낙 좋아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라도 기리고 싶었고 같이 듣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시 노이즈를 듣는 분들이 별로 없어서… 참석자 저조… (웃음)

 

〈RE:전자소음 MSBR/코지타노 사후 10년(RE:電子雑音 MSBR/田野幸治没後10年)〉 (2015.7.29) 홍보 포스터 (위)와 라이브 스트리밍 (아래)

 

장정우가 기획한 코지 타노 추모 음감회 포스터(2015.7.31)

 

그날 오대리 님, 홍철기 씨, 그리고 정우 씨의 지인 한두 분이 더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면 괜찮지 않았나요? (웃음)

하시 노이즈를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까 한두 분이라도 만나면 정말 반갑죠. 근데 큰 틀에서 노이즈를 듣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반갑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장르로서 하시 노이즈를 듣는 사람을 만날 때 더 반가운 거 같아요. 제가 느끼는 정서적 가까움이란 것이 있습니다. (웃음)

주변에 하시 노이즈 친구 몇 분 정도 계세요? (웃음)

두 사람… 세 사람…? (웃음) 모두 온라인 친구들이에요. 제 노이즈 생활이랄 것은 사실 온라인으로 시작해서 온라인으로 끝나는 그런 것들이지요. 그래서 인터넷을 사랑합니다.

혹시 주변 지인분들에게 이 음악을 권해보신 적이 있나요?

특별히 권한 적은 없지만 그런 경우는 있었어요.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 누가 제가 듣던 것을 들어보겠다고 이어폰 한쪽을 가져갔는데 제가 이런 걸 왜 듣고 있는지 설명해주기 귀찮아 엠씨스퀘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웃음)

화제를 바꿔 볼게요. 고루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노이즈 음악이 급진적이고 저항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언급한 대로 소리 그 자체는 그다지 급진적일 것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좀 더 흥미를 느끼는 건 인더스트리얼/노이즈의 선구자들이 ‘급진적인’ 소리와 함께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와 테마들을 많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급진적이라기엔 너무 진부해진 테마들이긴 하지만 제가 듣는 인더스트리얼과 궤를 함께하는 노이즈는 여전히 이런 이미지와 테마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하시 노이즈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혹은 인더스트리얼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역겨운 것, 정치적으로든 성적으로든 여러 측면에서 금기시되는 것의 추구나 내지는 묘사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금기시된 것들을 직접적으로 발설한다는 점에서 혐오 정치와 같이 가는 면도 있어요. 파시즘/나치즘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건 이미 익숙한데 유튜브 영상을 보면 손으로 하일 히틀러 표식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그룹이 러시아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다들 그렇게 손 표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와 저건 내가 절대 보러 갈 수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냥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인터넷으로만 즐겨야겠구나 싶었죠. 인터뷰 초반에 노이즈를 들을 때 압도되는 느낌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이미지가 유발하는 역겹고 불편한 감정들도 그것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더러운 뭔가에 공격받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그런 식의 분위기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제 마무리 할 때가 다가오는데 그전에 이 질문을 한번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장르로서 노이즈 음악말고 그냥 노이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와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노이즈 음악 말고 노이즈란 뭘까? 음…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근데 그 층위를 구분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음악 장르로서 노이즈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넓은 의미의 노이즈까지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하면 특정 하위 장르로서 노이즈와 그것의 역사가 가지는 그 구체성이 좀 지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그 두 가지(노이즈/노이즈 음악)를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농담 삼아 ‘나한텐 일상의 모든 소음이 음악이다…’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곤 했는데 사실은 두 가지가 절대 같지 않으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이즈 청취자들의 어떤 대표 이미지 같은 것이 있을까요?

일반화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노이즈를 듣는 사람들이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들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노이즈 청취자들이 노이즈만 듣는 건 아니고 여러 다른 음악을 거쳐서 노이즈에 당도하는데, 또 그러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종류에 한계가 없는 셈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듣는 음악의 범주가 훨씬 광범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해봤습니다. 한 노이즈 포럼에서 노이즈 청취자들이 유럽의 오래된 기차 소리를 녹음한 필드 레코딩 음반들을 서로 권하고 추천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승린 | halcyondrum@naver.com
소리문화연구자. 미술과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소리에는 위계가 없다’는 믿음을 모토로 듣는 행위와 관련된 문화적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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