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몇 년간 솔리스트를 선언한 연주자만큼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기반의 작업을 선보이는 시도도 늘어났다. 홀로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고 공연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창작의 양상도 점차 달라지고 있는 듯 보였다. 최혜원은 타악 연주자로 오랜 기간 활동했고, 현재는 미디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연주자에서 창작자로 정체성을 확장하면서 사용하는 음악적 도구도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계기로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실제로 마주했던 고민과 질문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통음악 중 타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미디와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최혜원이라고 합니다. 현재 해파리로 활동하고 있고, 무용, 영상 음악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전통음악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보통 자의로 음악을 시작하는 경우와 타의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로 나뉘는데, 이 부분이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과 세계를 만들어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는 자의에 의해 시작한 케이스예요. 제가 10대가 되기 전, 어렸을 때 사물놀이가 붐이었어요. 김덕수 선생님께서 풍물놀이를 사물놀이로 무대화하면서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배우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저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싶은 것이 항상 많았는데, 부모님이 웬만하면 다 시켜주셨어요. 공부하는 학원 말고는 거의 다 허락해 주셨거든요. 예체능 교육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피아노부터 바이올린까지 배우는 게 너무 많으니까 사물놀이는 안 된다고 한 거예요. 제가 청개구리 기질이 아주 심하게 있는지라 안 시켜주니까 더 하고 싶더라고요. (웃음)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친구들이 학예 발표회에서 사물놀이 하는 걸 보고 눈물을 막 흘리더래요.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시켜줘야겠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기회가 좋았던 게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학생들을 전문 연희인으로 키우려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분이셨어요. 김덕수 선생님께서 이끄는 한울림 예술단에 어린이 예술단이 있거든요. 뒤늦게 들어 갔지만 팀 소속 친구들과 같이 어린이 예술단 활동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해외 공연을 많이 다녔어요. 저랑 같이 배우던 친구들 모두 동갑이었는데, 그 중에는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저는 비교적 늦게 합류를 했죠.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국악중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국악고등학교만 다녔고요.
일찍 음악을 시작했는데 국악중학교로 진학하지 않은 건 굉장히 특이한 경우 아닌가요?
국악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계기가 있어요. 사물놀이를 배우면서 김덕수 선생님의 한울림 예술단에 여러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저희를 매니징 해주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선생님께서도 취미로 사물놀이를 배우셨는데, 배운 걸 연습해서 저희에게 다시 가르치는 형식으로 수업을 하셨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저희에게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매니저 선생님께서 저희 팀원들을 다 데리고 필리핀으로 학교를 가게 됐어요. 김덕수 선생님께서도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거든요. 매니저 선생님께서 공부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셔서 부모님도 설득해주셨고요. 설득이 되는 부모님들은 어차피 영어 공부는 필요한 거니까 같이 보내자고 결정을 하셨어요. 어쨌든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겠다고 하니까 넉넉하지 않았지만 도와주셨고요. 제가 약간 막무가내거든요. 엄마 말씀으로는 제가 또 울면서 내가 공부는 잘 할 자신이 없는데 이건 잘 할 수 있다고 이거 하나만 시켜달라고 했대요. 그렇게 필리핀에서 2년 정도 학교를 다니고 돌아와서 검정고시를 본 거죠. 그런데 타악을 공부한 사람은 ‘타악 전공’과 ‘연희 전공’으로 나뉘잖아요. 근데 어렸을 때 김덕수 선생님께서 여자 아이들은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엉덩이가 무거워지면 상모 돌리는 게 현실적으로 힘드니 공부해서 국악고등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신 거였거든요. 그때 김덕수 선생님께서 전통예술고등학교에 계셨을 때 였는데도요. 그때 함께 연주를 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그만 두고 5-6명 정도 남았는데 그 중 3명은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 친구는 검정고시 치고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친구 중에 한 명이 지금 악단광칠에서 타악기를 연주하는 전현준이에요. 어릴 때부터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입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혜원 님에게 전통음악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학교 교과서를 보면 ‘국악’과 ‘서양음악’으로 나눠서 배우잖아요. 전통음악도 아니고 국악이라고 하죠. 그런데 저는 이런 이분법적 구분을 배우기 전에 사물놀이를 접해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음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다섯 살 무렵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장구도 여러 악기 중 하나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오히려 국악과 서양음악이라는 분리는 국악고등학교와 같은 제도권 전문 음악 교육을 받게 되면서 더 공고해진 것 같아요. 전통음악이 저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최근 박민희 언니가 이야기 했던 지점에 동의해요. 언니가 저한테 전통음악의 리듬 사고로 박자를 본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비트 찍는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데, 전통음악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비트로 나와요. 예를 들어 사운드는 킥(kick)을 사용하지만 4박이 아닌 3박을 기준으로 작업을 한다거나, 전통음악에서는 2박, 3박을 자유롭게 혼용해서 패턴화 된 긴 호흡의 장단을 사용하는데 비트 작업을 할 때도 뭔가 꼬지 않으면 음악이 완성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런 걸 깨달을 때마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전통음악의 문법이 내 안에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도 영향을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통음악이 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죠.
인디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듣는 음악과 하고 있는 음악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공부한 건 스스로 내재화를 하고 지금 좋아하는 음악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 새로 공부를 시작했어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건 지금도 하고 있는 고민이긴 해요. 현재는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고등학생 때 내가 듣는 음악과 하는 음악의 간극이 가장 심했어요. 친구들과 평소에 즐겨 듣는 음악과 제가 연주하는 음악이 너무 달랐던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빅뱅을 듣는데 내가 공부하고 연주하는 음악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구구절절 말이 많아야 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해서 자주 찾아 듣는 음악과 내가 공부하는 음악의 간극이 크고 평행선상에 있어서 끝까지 가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걸 만나게 하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그때 저한테 영향을 많이 줬던 팀이 키네틱 국악그룹 옌(YIEN)인데, 언니들과도 항상 이런 고민을 했죠.
키네틱 국악그룹 옌(YIEN) – Heart of the Machine
평행선상에 놓인 두 간극을 만나게 하는 데 구체적인 방법론이 음악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표현 방법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훌(wHOOL)이라는 팀과 같이 활동을 하면서 였어요. 꽤 재미있는 음악을 하는 팀이었어요. 타악기연주자 최윤상 선생님, 피리연주자 김시율 오빠도 있었고요. 저는 한창 교복을 입고 훌(wHOOL) 공연을 볼 때였죠.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최윤상 선생님께서 타악하는 여자 4명이 모인 그룹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 말고 나머지 셋은 전부 대학생이었거든요. 근데 언니들이 제가 떠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연락을 받고 나니 대학이고 뭐고 너무 하고 싶었던 거죠. 그때는 제가 다룰 줄 아는 게 전통 타악기 밖에 없었거든요. 힙합이나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비트를 장구로 치는 걸 처음 접해봤죠. 타악기 연습실에서 다른 친구들은 다스름을 치고 있는데 저는 장구로 비트를 새롭게 연주하면 그게 너무 신나더라고요. 그땐 다양한 창작 음악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훌(wHOOL)이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 저도 다양한 방식의 연주를 처음 접한 거니까요. 그때부터 나는 지금 장구를 칠 수 있으니 장구로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KBS 음악창고에 출연한 훌(wHOOL)
그리고 DJ 바이오켓(BIOKAT)이라는 오빠가 옌(YIEN)과 작업을 하는 걸 보면서 내 음악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장구에서 컴퓨터 음악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20대 초반까지는 제가 연주할 수 있는 타악기로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20대 중반에 깨달았어요. 제가 굉장히 갇혀 있더라고요. 국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갇혀 있었던 것 같고, 맨날 클럽에서 놀고 일렉트로닉 음악을 훨씬 많이 듣는데 내가 굳이 미디로 국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표현 방법이 많이 달라졌죠.
고등학교 때도 이상한 걸 하는 애였어요. 눈치 안보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성격이 지금 음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고3 때 생활 생각해보면 분명히 좋은 대학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훌(wHOOL) 활동을 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 너무 즐거워 보였어요. 매일 공연 끝나고 밤에는 뒤풀이하면서 술 먹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어요. 저는 교복 입고 가서 공연 끝나면 지하철 끊기기 전에 독서실로 와서 공부를 하다 자고 아침에 또 학교를 가야 했어요. 나도 저 세계에 빨리 편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옌(YIEN),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정가악회나 권송희 판소리 LAB 등 정말 다양한 단체 활동을 거치셨습니다.
단체 활동을 오랫동안 많이 했는데요. 타루는 객원으로 거의 10년 정도 활동을 했어요. 스무살 때부터 활동했던 옌(YIEN) 언니들이랑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작업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요. 만날 때 마다 우스갯소리로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이야기해요. 그 시절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시대에 우리가 활동을 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라고요. 그때와 지금은 몇 년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껴요. 옌(YIEN)에서 음악을 하면서 미디 기반으로 하는 일렉트로닉 장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죠.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음악 활동을 하고 무대에 서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 깨우치는 거예요.
타루에서는 이야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내가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기승전결의 서사가 있고, 그 호흡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떤 악기를 쓸지 고민하는 게 좋아요. 타루 작업에서는 보통 작곡가가 곡을 줄 때 타악기를 비워 놓는 경우가 많아요. 자유롭게 이 부분을 베리에이션(Variation) 해보라고 비워 두거든요. 예를 들어 4/4 휘모리이고, 쉐이커(Shaker)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러면 쉐이커를 쓰되 이후 장구를 넣거나 젬배를 넣는 건 연주자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요. 비워진 부분을 내 마음대로 채워 넣는 게 재밌더라고요. 음악적 견해가 다르거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설득하는 과정도 정말 즐거워요. 주인공과 서사를 고려해서 내가 생각했을 때 음악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어울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재미있죠. 저는 무대를 생각하고 그 위에서 흐르는 기승전결 스토리를 생각하는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걸 깨닫게 해준 활동이 타루였어요.
그리고 제가 정가악회에 있었다고 하면 다들 엄청 놀라거든요? 정가악회에 있을만한 느낌이 아닌가 봐요. (웃음) 그래도 정가악회는 이제 갓 대학 졸업하고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지금도 저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DMZ 피스트레인 김미소 대표님한테 정가악회에서 연주자를 뽑는다고 말을 했더니 너 같은 성격에 평생 언제 출근하는 일을 해보겠냐면서 천재현 대표님 밑에서 바짝 출근하는 일도 해봐야지 지금 아니면 못 해볼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 듣고 갔어요. 학교에서 시험 보는 거 이외에 오디션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이수대엽 연습해서 정가악회 오디션을 봤죠.
정가악회가 음악을 만드는 특유의 방식이 있어요. 음악을 정말 치열하게 바라봐요. 한 곡을 만들더라도 그게 완성이 아니고 계속 물고 늘어져요. 같은 부분을 계속 연습하고 토론하는 자세를 배웠어요. 저는 이 모든 과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정가악회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분들이 자기 작품 만들 때 끝까지 나를 설득할 수 있는지 이 부분을 굉장히 많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거기에 다 따라가지 못했지만요. 거기서도 맨날 농땡이를 부렸거든요. 처음 정가악회 들어갈 때만 해도 내가 정가악회에 있지만 일렉트로닉을 너무 좋아하고 놓지 않고 싶어서 낮에는 정가악회에서 가곡 반주를 하고 밤에는 이태원에서 제일 유명한 클럽에 가서 서빙 알바를 했어요. 끝과 끝에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중 생활을 했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3개월 하고 나가떨어졌지만요. 이후에는 대표님한테 일렉트로닉 하면 안 되냐고, 그런 팀 만들 생각 없으시냐고, 소녀시대처럼 정가악회 유닛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런데 대표님이 그런 저의 스타일을 존중해 주셨어요. 저는 진짜 날나리였어요. 그때만 해도 악단광칠 같은 팀은 없었으니까요. 전부 머리는 까만색이고 한복을 입어야 되니까요. 음악은 또 엄청 진지하잖아요. 그래서 머리 염색하고 와서 대표님 이 색깔로 이 정도는 괜찮죠? 머리 전부 올려야 되면 흑채 뿌릴게요. 이러기도 했어요. (웃음)
권송희 판소리 LAB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송희 언니가 타루에서 나오면서 자기 이름을 걸고 시작한 작업인데, 2012년 12월에 권송희 판소리프로젝트3 <세상나가는 대목>에 타악 연주자로 저도 같이 참여 했었어요. 그때 옌(YIEN) 언니 공연에 도움을 주면서 송희 언니랑 인연이 시작됐죠. 작업을 하다 보니 송희 언니랑 음악적 코드가 되게 잘 맞았어요. 저도 비트를 공부하고 있을 때였는데 음악적인 호흡이나 코드가 유기적으로 잘 맞았어요. 그때 활동을 기반으로 지금 해파리까지 연결되었고, 다른 장르의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죠.
굉장히 다양한 성격의 단체에서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 각각의 활동 모두 혜원 님에게 중요한 준거점을 마련해준 것 같네요.
정말 여러 가지를 다 겪어본 것 같아요. 팀 활동을 많이 해본 케이스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창작자와 창작자가 작업 과정에서 부딪혔을 때 싸우는 게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좋은 싸움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조율하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고집도 세고 원하지 않는 방향이면 절대 안 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일단 한 번 해볼게요 라고 말해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는 방식을 팀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타악 연주자는 ‘반주자'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고수나 타악 연주자를 조명하는 공연이 늘긴 했지만 타악기는 다른 악기와 함께 합주를 할 때 완전해진다는 관념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합니다. 전통음악의 합주 방식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문제겠지만, 어쨌든 연주자와 창작자 사이에서 나를 어떻게 포지셔닝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거문고를 비롯한 현악기 연주자들도 레퍼런스가 없어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타악기는 현악기와는 또 다른, 그리고 한층 더 어려운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혹시 이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나요?
저는 이제 타악 연주자는 아닌 것 같아요. 타악 연주자로서 가장 중요하고 큰 역할은 반주잖아요. 근데 반주는 안 하니까요. 제가 제일 잘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타악기라 그걸 무대에서 보여주고 연주를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반주하는 타악 연주자는 아닌 것 같아요. 좀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거문고와도 달라요. 일단 타악기는 음정이 없잖아요. 서양악기는 마림바, 팀파니 같이 솔리스트 곡도 많고 어느 정도 음정을 조율할 수 있는데 한국의 타악기는 어려워요. 음정이 없는 곡을 길게 듣기는 정말 어렵거든요. 물론 타악 연주자도 솔리스트가 될 수 있죠. 최근에는 한솔잎, 방지원, 김지혜 등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음악의 3요소에서 멜로디와 하모니가 빠진 음악이 한 곡, 두 곡으로 좋을 수는 있지만 60분 이상의 공연을 끌고 갈만큼의 힘이 생기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나 싶고,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한데 모두가 다 창작을 하고 솔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국악을 전공한 친구들이 결국에는 자리도 많이 없고 스스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창작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적으로도 함께 해결 되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내가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확신을 가지면 좋겠어요. 친한 친구 중에서 정악을 너무 좋아해서 혼자 매일 연습하고 지금도 레슨을 받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주자가 설 자리가 많이 없어서 안타까워요. 저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대로 연주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 만들어봐야지, 혼자 다하려면 어떻게 하지, 한복이 너무 싫으니까 한복 입는 공연은 안해야지 하면서 하나씩 좁혀나갔던 것 같아요. 꽤 오래전에 KBS국악관현악단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기에게 전화가 와서 종묘제례악 연주를 하는데 혹시 타악 연주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제가 처음 한 질문이 한복 입냐 였어요. 그렇다고 하길래 그러면 안 하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대뜸 너 요즘 먹고 살만한가보다 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물론 한 푼이 아쉬울 때긴 했지만 내가 식당 알바를 해서 벌고 말지 싫은 건 안 한다고 생각하니 명확해 지더라고요.
전자음악, 사운드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창작자이자 솔리스트로서 정체성이 이동하게 된 과정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아카데미(영상디지털음악 전공)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스케일이 큰 공연을 보면 무대에 타악 연주자가 여러 명 오르잖아요. 결국 나 혼자서도 무대를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타악하는 연주자들이 하는 고민이기도 해요. 제가 DAW를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니즈 때문이고요. 타악은 결국 반주 악기더라고요. 타악기 솔리스트는 될 수 없는 걸까? 나도 내 음악을 하고 싶은데 친구들 반주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이 있었죠. 옌(YIEN)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창작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정말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후배들이 물어보면 저도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이 공부하라고 말해줘요. 그때는 레퍼런스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클래스를 알아 봤어요. 상상마당에 아카데미가 있더라고요. 캐스커가 하는 에이블턴 라이브 클래스를 들었어요. 모두가 거쳐 간다는 그 클래스입니다. (웃음) 그때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에이블턴 라이브 6, 7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생각보다 에이블턴 다루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컴퓨터를 익히는 게 많이 느려요. 하긴 해야겠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도 정말 웃기지만 똑같은 기초 클래스를 세 번 들었어요.
아카데미에 가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미디 레슨을 받으러 갔는데 저랑 또래였던 레슨해주는 친구가 프로그램을 배우기 전에 맥북을 사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께 10개월 할부로 갚겠다고 말씀드리고 맥북을 샀어요. 그런데 또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는 걸 사야 된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초보였던 것 같아요. 그 인터페이스 지금도 쓰고 있거든요. 고급 장비를 알려준 거죠.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르고 비싼 장비를 샀어요. 3년 정도는 포장된 채로 그대로 있었어요. 맥북으로는 드라마만 열심히 봤고요. (웃음) 이후에 대학 다니면서 에이블턴 수업을 세 번 정도 들으니까 조금 알겠더라고요. 근데 혼자서는 뭘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몰랐어요.
그때 무용하는 친구가 작은 발표회를 하는데 장구가 필요하다고 저한테 연주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최근에 내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데 이런 음악을 시도해 보면 어떻겠냐고 꼬드겼어요. 근데 진짜 죽도 밥도 아닌 거예요. 지금은 들어줄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공연을 대학 때 한 거죠. 어쨌든 무대에 서는 경험이 늘면 실력도 늘잖아요. 계속 발전을 하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장비 다루는 데도 익숙해졌고 내가 원하는 걸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속이 후련하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 타악기를 점차 놓게 된 것 같아요 다시 돌아와서 대학원을 가게 된 건 사실 굉장히 평범한 이유였어요. ‘전통음악’ 꼬리표가 너무 많이 따라 다니는 거예요. 물론 그 꼬리표가 있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저는 ‘음악’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전통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한정하는 게 싫더라고요. 그러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무작정 간 거죠.
대학원에서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원에서는 오히려 조금 다른 걸 확인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 친구들은 대학 졸업하면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에 비해 조금 늦게 대학원에 간 케이스인데, 제가 간 대학원에는 늦게 들어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제가 음악 활동 경험이 많고, 그 안에서 큰 임무를 많이 맡아왔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어요. 저는 되게 불안했거든요. 내가 하는 게 맞는 길인지,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확인 받을 데가 없고 계속 책임지는 일만 하다 보니 불안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가면서 저의 현 위치를 조금은 선명하게 확인을 할 수 있었어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알게 된 거죠.
그리고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실용음악’이다 보니 화성학을 비롯해서 전통음악에서 사용되지 않는 다른 개념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어요. 화성학이 되게 어려웠어요. 수학 공식 외워서 풀 듯 이해를 했는데 나중에 역으로 음악을 직접 하면서 이해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단2도를 제일 좋아합니다. (웃음) 또 매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특히 영상에서 음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어요.

최혜원 솔로 콘서트 <‘KoreanBeat&Groove’ SWITCH> 포스터
최혜원 솔로 콘서트 <‘KoreanBeat&Groove’ SWITCH>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국악방송 라디오 <불금N국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3년 정도 패널을 했어요. 음악 활동으로 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받은 제안이에요. 저랑 타루 대표인 정종임, DJ 웬디 라는 분과 3주에 한 번 꼴로 돌아가면서 국악을 샘플링한 비트를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제가 3년 동안 40곡 가까이 만들었더라고요. 그때는 힘든지도 모르고 했어요. 그렇게 국악을 샘플링한 결과물이 차근차근 쌓였는데 공들여 만들다보니 그냥 두기에 좀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잘 만들어진 곡을 토대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고민도 있었어요. 왜 나는 혼자 공연을 못할까? 김미소 대표님과 엄청 고민을 했거든요. 솔리스트로 어떻게든 무대를 꾸려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출사표처럼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된 거죠. 근데 이 작업이 정말 쉽지 않았어요. 어쨌든 저는 청취용으로 음악을 만든 거잖아요. 라디오 방송용이었기 때문에 무대 공연과는 매체 자체가 다른 거죠. 내 곡을 어떻게 공연화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너무 어려웠어요. 지금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내가 작업한 음악이 있다 하더라도 무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까 라는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인 거예요. 청취용 음악과 무대 음악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어요. 청취용 음악을 잘 만들고, 이걸 무대로 전환하는 작업은 별개의 작업인 거죠.
최혜원 <‘KoreanBeat&Groove’ SWITCH> 中 대취타
단독 콘서트 마지막 곡이 <무아>라는 곡이었는데 20분짜리 곡이에요. 안은미 컴퍼니 소속의 김혜경 무용수랑 함께 한 곡인데요. 제가 알고 보니 기승전결이 많은 호흡이 긴 음악을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해요. 영화는 2시간이면 끝나지만 드라마는 16시간을 봐야 하잖아요. <무아>는 짧은 리프가 20분 내내 반복되거든요. 호흡이 점점 쌓여 가면서 관객이 앉아 있다 점점 뒤로 가는(허리를 젖히며) 경험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20분 내내 가만히 서서 컴퓨터와 미디장비로 음악을 쌓아 가는데 무대에서 가만히 서 있는 장면만 보여주는 건 재미가 없어서 이걸 도와줄 수 있는 무용수와 같이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개인적으로 혜경 언니 춤을 좋아해서 부탁을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무대에서는 청취용 음악을 가지고 음악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걸 제공하는 거예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무대화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보컬 없는 공연을 한 시간 보기는 힘들다’라는 거예요. 저는 권송희 판소리 LAB도 했었고, 타루도 했었고, 정가악회도 했었잖아요. 보컬, 보컬이 없다면 가사, 가사가 없다면 내용을 전달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비트가 있는 음악을 할 때 클럽이나 춤을 추러 오른 환경이 아니라면 딱딱한 객석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건 정말 힘든 거죠.
최혜원 <‘KoreanBeat&Groove’ SWITCH> 中 MUA
매체에 따라 음악의 구성이 달라진 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무대의 구성 말고 혜원 님의 신체가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대 매너나 태도 등이요.
스위치 공연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나는 무대에 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전까지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만들어 주고 싶다거나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솔로 콘서트를 하고 무대에 혼자 서고 나니까 나는 무대 위에서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이걸 평생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공연에서 실제로 연주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 훨씬 마음이 편하기도 했어요. 저는 창작자보다 연주자로 활동한 시기가 훨씬 길잖아요. 지금이야 내 옷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책상 앞에서 하는 사운드 작업은 조금은 불편한 옷이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한 옷처럼 느껴졌어요.
공연에서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단순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는 거요. 공연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결국에는 음악과 음악을 연결한 거지만 그래도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좋은 공연은 어쨌든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지는 공연이니까 기승전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공연에서 내가 연주를 안 하고 있을 때 뭘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이때부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계속 중요한 이야기가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이 음반이 되는 과정과 청취용 음악이 무대가 되는 과정은 전혀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는 거잖아요. 결국 같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매체에 따라 다른 목표를 갖게 되고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게다가 혜원 님은 어릴 때부터 무대를 목표로 신체를 훈련했음에도 연주자에서 창작자가 되면서, 다루는 음악의 장르가 변하면서 무대의 문법을 새롭게 다시 고민한다는 지점도 흥미롭고요.
네. 해파리에서 엄청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음원이 더 좋은데 굳이 공연장에 가서 봐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장은 다른 버전이 되어야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음원과는 달리 공연장에서만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반대로 말씀하신 것처럼 공연은 잘 만들었는데 공연이 음원화 될 때는 또 다른 맥락이 있는 거잖아요. 음원은 음원 나름대로 깎고 정리가 되어야 해요. 두 개는 분명하게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것 같아요.
혜원 님께서 느끼는 전자음악과 타악 연주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게 참 희한한 지점이긴 한데요. 두 가지의 다른 작업 방식이 있는 것 같거든요. 하나는 미디 기반, 즉 소스 악기를 불러오거나 신디사이저를 가지고 그 악기를 잘 만지고 재미있게 조합하는 작업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오디오 소스를 가지고 와서 작업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둘 다 같이 사용하는데요. 저는 오디오 파일을 잘라서 사용하는 작업에 훨씬 특화 되어 있어요.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는데, 이게 초견이랑 비슷해요. 악보랑 비슷하더라고요. 소스를 녹음해서 잘라서 배열해 놓고 보면 그냥 악보처럼 보이거든요. 타악기를 배열해 놓은 타악기 악보처럼 느껴져요. 저는 멜로디가 있는 경우도 타악기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애초에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리듬 기반이기 때문이에요. 아르페지에이터(Arpeggiator)라든지 아니면 멜로디 라인이 있더라도 저에게는 리듬화 되어서 보여요. 결국 전자음악을 하더라도 타악기의 형식으로 펼쳐져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악기를 따로 분리해서 작업하고 소리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데 오디오 소스를 잘라서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요. 미디악기로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들을 다시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서 작업하기도 해요. 파형이 나열되어 있는 느낌이랄까요. 타악기가 조금 많아진 악보 같아요. 악보를 보고, 악보를 그려 넣듯 작업하는 게 편안해요. 이 부분이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른 지점 아닐까 싶어요.
최근 국악계에서 미디나 전자음악과 사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각각의 시도가 모두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저는 엄청 와 닿아요. 제가 시작할 때는 가까운 주변 어디 물어볼 데가 없었어요. 전자음악이나 대중음악 하시는 분들이 아니면 물어볼 데가 없었어요. 그리고 모든 작곡가들이 미디를 다룰 줄 아는 건 아니었어요. 지금도 못 다루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결국 이쪽으로 넘어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찌 됐건 시기의 차이일 뿐 이쪽으로 온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발전이잖아요. 우리는 손이 2개 밖에 없어요. 거기서 오는 게 가장 크다고 봐요. 거문고 하는 친구들도 산조 연주할 때는 손 2개로 가능한데 산조 말고 다른 음악을 혼자서 하려고 하면 손이 4개, 8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그게 가능하지 않다보니 미디나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건 너무나도 많은데 예산은 부족하고 그걸 또 혼자서 하고 싶은 거죠.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면 이게 최선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최근에 소리꾼 장서윤씨가 <어린왕자>를 가지고 영상 작업물을 만드는데 사운드 작, 편곡으로 함께 작업을 했어요. 그 친구가 미디를 되게 능숙하게 다루는 건 아닌데, 이런 모티브로 썼으면 좋겠다는 걸 로직으로 조금 찍어서 들을 수 있게 해줬어요. 그랬더니 소통이 훨씬 원활했어요. 아예 전자음악을 모르는 친구랑 대화할 때랑은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판소리 하는 친구지만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고 거기 위에 시중에 나와 있는 루프라도 간단히 얹어보면서 원하는 느낌을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조금 깨기 힘든 부분도 있긴 했어요.
장서윤의 판소리 <어린왕자> 中 사업가
영상은 에피소드 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혹시 작업할 때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확실히 밝은 것보다 어두운 게 저한테 잘 맞긴 하더라고요. <뱀>과 <오아시스>처럼 조금 다크한 사운드와 타악기 기반의 작업은 너무 쉽게 잘 됐어요. 근데 <꽃>처럼 밝은 멜로디나 화성을 써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은 어렵긴 했어요. 근데 저는 안 해본 거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었어요.
장서윤의 판소리 <어린왕자> 中 뱀
혜원 님의 활동 중 협업도 빼 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예술가들과 협업을 하셨는데, 협업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생각해보니 음악하는 분들과 협업을 해 본 기억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권송희, 김시율 씨와 작업하면서 정말 내 작업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무용 작업이에요. 무용 작업은 시간이 맞으면 가능하면 전부 다 하려고 해요. 같이 작업을 해보고 다음에 다시 작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요. 저는 꽤 단순한 사람이라 일단 무조건 해봐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저는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 싸워서 결국 둘 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좋은 결과물을 얻어 내는 거죠. 그런데 이런 싸움이 잘 안 될 때는 다시 작업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돼요. 저는 일단 다 이야기해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고요. 정가악회 들어가기 전에 김인수 선배님한테 배운 건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주관도 뚜렷한 편이고,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말하는 타입이에요. 어렸을 땐 아무래도 좀 더 심하잖아요. 근데 선배가 하는 말이, 네가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한 번 해보고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었어요. 이 말이 아직까지도 많이 기억나요. 당장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해보고 아니라고 말하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다른 일이니까요. 창작이 아니라 연주라면 제가 즉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쉬운데, 창작자로 작업할 때는 작업을 보여줘야 하니까 어려움이 있긴 해요. 게다가 제 생각이 늘 100%로 맞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제안해서 해보고 좋으면 솔직하게 좋다고 이야기해요.
협업할 때 음악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룰이 있는지 궁금해요.
호흡이라고 이야기 하면 또 너무 전통음악 하는 사람 같나요? (웃음) 뿜으시는 거 아니죠. 전통음악에서 말하는 호흡이나 제가 지금 말하려는 호흡과 결국은 같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무용 작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긴 호흡으로 봤을 때 하나의 작업에서 밸런스 조절이랄까요. 지금이 힘을 줄 때인지, 힘을 뺄 때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무용 작업을 할 때는 지금 이 장면만 놓고 음악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만드는 게 아니라 계속 맨 처음부터 보면서 무용수의 호흡이나 관객의 호흡으로 따라가면서 음악으로 도움을 주는 거죠. 그래서 큰 의미의 호흡을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하신 기승전결이나 스토리텔링과도 연결이 되네요.
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한 공연의 기승전결을 만들려면 덜어내야 할 때는 덜어내야 하는 거죠. 요즘 많이하는 영상작업도 기승전결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타악기로 스토리텔링 하는 것을 모니터안으로 들여 온 것 같아요. 제가 안무가와 작업하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어요. 숫자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요. 예를 들어 한 시간 공연이라면 0으로 시작해서 클라이막스가 10이라고 했을 때 클라이막스를 만드는 방식이 무음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 음악의 포텐을 터트리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래서 안무가 아직 나와 있지 않더라도 작품을 놓고 음악을 이야기할 때 0에서 10까지로 해서 0에서 10까지 점진적으로 에너지가 올라가는지, 아니면 0에서 10으로 훅 뛰는지 그래프를 그려놓고 큰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음악이 들어가는 부분을 상의하는 거죠. 결국 공연의 기승전결을 합의하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용은 음악보다 조명이나 의상이 훨씬 중요해요. 무용은 무대 리허설 버전과 본 공연 버전이 너무 달라요. 너무 많이 달라져서 음악의 단위를 더 크게 상상하고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용가, 음악가와 협업할 때 다른 지점이 있나요? 그리고 음악가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배경에 따라서 이 작업에 영향을 끼치나요? 가령, 판소리 소리꾼과 작업할 때랑 가객과 작업할 때 보컬의 음악적 배경이 혜원 님의 음악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가랑 협업을 할 때는 분명한 게 있어요. 음악적인 언어로 대화를 하죠. 무용가랑 협업할 때는 훨씬 자유로워요. 그래서 무용가랑 협업할 때는 레퍼런스를 들려주지만 음악가랑 협업할 때는 레퍼런스를 잘 안 들려줘요. 무용가랑 협업할 땐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10개 정도 찾아서 이걸 순서대로 매번 다르게 틀어 달라고 이야기를 해요. 왜냐하면 움직이는 분들은 음악에 익숙해지면 그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가지고 가면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안무자와 협의된 분위기 속에서 매번 다르게 곡을 들려주는 거죠. 그러면 제 음악을 가지고 갔을 때 편안하게 듣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반대로 음악가와 협업할 때 분위기만 들으라고 음악을 줘도 멜로디, 리듬, 사운드 다 들리기 때문에 레퍼런스가 독이 돼요.
생각해보니 음악가 중에서는 제가 성악하는 분들과 작업을 많이 했더라고요. 가곡과 판소리를 분리하자면 명확하게 다른 게 있어요. 판소리는 가사가 명확하게 들리잖아요. 가사가 명확하게 들리는 음악을 작업하는 것과 가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음악을 작업하는 건 되게 달라요. 이건 해파리 작업에서도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멜리즈마(Melisma)라고 하잖아요. 가곡은 하나의 소리를 계속 밀고 올라가면서 노래를 하죠. 판소리는 가사가 분명하고, 웬만하면 한 음절에 한 말씩 들어가서 그냥 노래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도 문제가 없어요. 가곡으로 새롭게 작업 할 수 있는 장르는 아직까지 스스로 조금 한정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작업을 떠올려 보면, 악기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아요. 피리하는 친구와 작업을 했었는데 물론 음색이 영향을 미칠 순 있지만 그냥 악기 중에 하나로 인식하게 돼요. 그런데 가사가 있는 음악은 많이 어려워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한 작업
보컬과의 작업에서 가사가 잘 들리는지, 잘 들리지 않는지의 유무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어떤 지점이 다른 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가사가 있는 음악이라면 어떤 음악이든 음악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상상하는 데 일종의 제한이 있고 그렇다면 오히려 작업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앞 부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소리꾼은 스스로도 스토리텔러라 생각하고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너무 뻔한 음악이 되기 쉽다는 거예요. 장서윤 씨 작업할 때도 오히려 키(key)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었어요. 최대한 비트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든거죠. 어떻게든 손 쉽게 대중음악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 거예요. 이날치처럼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나온 라인이 아니라면 이건 내가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멜로디는 최대한 배제하고 사운드 요소로 만들자. 여기까지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생각했어요.
근데 또 <실크타령>은 편안하게 작업했어요. 이건 정말 내려놓고 만들었거든요. 송희 언니, 시율 오빠, 그리고 저까지 각자 잘 하는 거 하자고 약속하고 만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비트를 완전 빠르게 찍을 테니까 이쯤에서 알아서 들어와 이렇게 된 거죠. (웃음) 너무 쉬운데, 쉬워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그렇게 쉬워지기가 쉽지 않거든요. 제가 어려운 걸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뻔하게 하는 것도 싫어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쉽지만 뻔한 걸 피하는 게 진짜 어려운 거죠. 이런 어려움도 있어요.
<봉합만찬(縫合萬餐)> 공연 中 실크타령
저는 종종 창작 판소리를 볼 때 저한테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힘들 때가 있어요. 너무 뻔해서 소름이 돋아 버리고 음악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달까요. 장서윤씨의 <어린왕자>가 좋았던 건 음악가가 의도한 음악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되게 넓었기 때문이에요. 관객인 나에게 허용된 상상의 범위가 넓은 거죠.
거기서 가장 큰 포인트가 있는데요. 멜로디를 안 썼어요. 노래를 받쳐주는 멜로디가 거의 없어요. 루프 형식으로 반복해서 패턴화 시켜 이걸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을 썼어요. 화성으로 멜로디를 만드는 걸 최대한 배제한 거죠. 화성을 잘 못 견디겠더라고요. 해파리 작업에서도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음악이 하나의 코드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하는 대부분의 음악이 감정을 만들어주는 코드를 배제하다 보니까 코드 1개, 2개를 많이 쓰죠. 그리고 단2도!
단2도!
그래서인지 음악이 자꾸 비슷하게 나온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많이 할수록이요. 이걸 깨야하는데 어떤 방식일지는 아직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아무래도 리듬 패턴을 많이 쓰잖아요. 멜로디를 화려하게 쓰는 걸 안 좋아하고요. 멜로디를 안 쓸 때 나오는 음악의 느낌이 비슷하잖아요. 자기 복제와 그 사람의 스타일은 한 끝 차이인 것 같거든요. 잘 못하면 자기 복제고, 잘 하면 자기 스타일인 거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부분이기도 하고요. 멜로디를 안 쓰다 보니 음악이 비슷한데 그렇다면 나도 멜로디를 써봐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손이 잘 안 가게 됩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런 가 봐요. 멜로디를 잘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협업이 있으신가요?
대부분 기억해요. 저는 무용작업을 할 때 라이브로 큐를 다 맞춰주거든요. 음악만 주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보고 제가 다 따라가요. 이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연습에 많이 가야하는 상황이 생기고 재공연을 하더라도 안무가 기억이 나요. 웬만한 무용 작업은 안무를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과 볼레로를 했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일상의 소리를 가지고 와서 볼레로를 구현하는 거였어요. 킥(Kick), 스네어(Snare), 탐(Tom) 등이 하던 걸 일상의 소리로 바꿔 넣는 거거든요. 트랙이 200개가 넘었어요. 멜로디는 휘파람, 탐은 물통 치는 소리, 스네어는 젓가락 굴리는 소리 이런 식으로 바꾸는 거죠. 이렇게 세세하게 하나하나 리듬을 만져서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 종일 볼레로만 생각하게 돼요.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하루 종일 그 멜로디만 생각이 나요.
국립현대무용단 <쓰리볼레로> 하이라이트
최근 해파리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십니다. 해파리는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인가요? 스스로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를 하는 팀인데요. 가곡을 노래하는 박민희와 타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만드는 최혜원이 만나 함께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규정짓지 말고 즐거운 음악을 하는 게 목표예요.
2019년 여름, 생기탱천에서 두 분이 호흡을 맞추는 걸 봤어요. 그때부터 해파리에 대한 구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나요?
아니요. 처음부터 팀을 구상 한 것은 아니고요. 제가 스웨덴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스웨덴 국립 전자음악 스튜디오가 있어요. 국/내외 아티스트가 지원을 해서 갈 수 있는 레지던시예요. 1년에 2명 정도 가는데 저는 제가 될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체류하게 됐어요. 한 달 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하겠다고 계획서를 써서 냈는데 스튜디오도 너무 좋고, 이렇게 혼자 떨어져 있는 경험은 앞으로도 없겠구나 싶어서 열심히 놀았어요. 혼자 씽씽이 타고 동네 산책하고 놀고, 스튜디오에서 12시간 동안 유튜브 보고요. 9000만원 짜리 좋은 스피커로요. 그러면서 하루에 비트를 하나씩만 찍어볼까 하면서 작업을 했죠. 좀 많이 나온 날도 있고 적게 나온 날도 있었어요. 그때 스케치한 것들로 해파리는 물론이고 다른 작업에도 많이 썼어요. 이런 경험은 앞으로도 진짜 많지 않겠다 생각을 했고,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웨덴에서 딩가딩가 하고 있을 때 박민희 언니가 메일을 보내 왔어요. 생기탱천에서 혹시 같이 음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은 거죠. 지인들이 많이 겹쳐서 서로 알고 있긴 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어요. 펜팔하듯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했어요. 그러다보니 서로 겹치는 부분이 생겼는데 그게 테크노, 엠비언트, 종묘제례악이었어요. 근데 너무 신기한 거예요. 저는 종묘제례악을 너무 좋아하는데, 종묘제례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싫어하는 게 같았어요. 그래서 생기탱천에서 잼(Jam)식으로 해보고 이후에 남산국악당에서 변신술 공연을 하게 됐죠. 30분 셋을 만들어야 했는데 엠비언트는 너무 쉽게 잘 만들어졌어요. 둘이 싫어하는 게 비슷하고, 지켜야 할 게 비슷하다보니까 뚝딱뚝딱 만들었어요. 이후에 본격적으로 남창가곡과 종묘제례악을 모티브로 작업을 해보자고 이야기가 됐고요. 그 때까지는 혜원/민희 두 사람의 이름으로 함께 작업을 하다가 2020년 4월 남산국악당 공연 이후에 본격적으로 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구체적인 음악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재료인 전통음악이 있고, 오랜 기간 전통음악을 학습한 보컬과 연주자가 작업을 합니다. 음악에 대한 구상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식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나요?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음악들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악을 만들 때고 있고, 제가 스케치를 가져가서 진행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반대로 언니가 멜로디 라인이 떠올랐다며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고요.
굳이 따지자면 국악씬이 아닌 대중음악씬을 겨냥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음악가로서의 애티튜드가 조금 다른가요?
국악씬도 없지만 국악씬이라고 이야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있어요. 그냥 음악의 하나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국악씬이 아닌 대중음악씬을 겨냥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맞고요. 전통음악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색깔이 굳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두 사람 모두 전통음악을 오래 공부해 왔고 자연스러운 언어죠. 서로 좋아하는 걸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 거고요. 그래서 국악씬과 관련된 기회는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거죠. 대신 인디나 외부 장르에 있는 건 하고 싶어요. 대중음악씬에서 자리가 굳건해진 다음 국악 쪽에서도 불러준다면 너무 고맙지만 국악씬에서 활동하면서 거기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르 구분에서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맞아요. 국악 지원을 받으면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지원을 받지 않으면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긴 해요. 원래 목표는 지원금을 받지 않고 대중음악에서 하는 것처럼 해보자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작년에 아트 체인지업이라는 영상 제작 지원을 통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죠. 장르 구분은 당혹스럽지는 않아요. 다들 너무 당연하게 국악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민희 언니가 가곡 창법으로 노래하고, 제가 박을 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계속 대중음악씬에서 활동한다는 태도를 유지하려 해요.
해파리(HAEPAARY) – 소무-독경
해파리의 음악을 대중들이 어떻게 듣길 원하시나요?
대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양쪽에서 밀어내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국악씬에서는 국악 아니야, 대중음악씬에서는 대중음악 아니야 이렇게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음악으로 지속적으로 소비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소비가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게 국악과 대중음악의 중요한 포인트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국악은 잘 소비가 되지는 않잖아요. 사람들이 즐겁게 다른 음악을 듣는 것처럼 하나의 음악으로 들었으면 해요. 엠비언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엠비언트 음악을 찾아 듣고, 테크노를 좋아하는 사람은 테크노를 찾아 듣는 거죠. 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희를 봐주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소무-독경>을 누구는 테크노로, 누구는 국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른 장르로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냥 각각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거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 생각해서 플레이 리스트 안에 넣어서 듣는다면 가장 좋은 일 아닐까요? 특별하게 듣는 것도 원치 않고 자연스럽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해파리(HAEPAARY) – 귀인-형가
정가를 훈련한 보컬과의 작업이라 다른 성악 장르로 확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통음악의 레퍼토리는 제한적이라 활동을 하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은 있으신가요? 종묘제례악 이후에는 어떤 곡들로 작업을 하실 계획인가요?
저희가 종묘제례악으로 시작을 했는데 시리즈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제례악 곡이 추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저희가 각각 따로 만들어 놓은 곡도 있어요. 그리고 가곡 창법으로 노래하는 것도 있지만 <반너머>라는 곡처럼 다른 가사가 들어간 음악도 있어요. 오히려 아예 쉬운 곡, 사실 우리에겐 너무 어렵지만 뻔하지 않지만 쉬운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어요. <경포대로 가서> 같은 곡이요. 쉽게 들을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어렵지만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음악이 좋은가 라는 문제에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내는 건 무척 어려워요. 전통음악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가지고 와서 음악에 녹여낸 건 알겠지만 이 음악이 객관적으로 좋은가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소무-독경>, <귀인-형가>는 납득이 되거든요. 민희 언니도 나름 고민이 있을 텐데 제가 조금 더 심한 것 같아요. 국악을 가지고 왔을 때 별로인 경우를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까 스스로 검열이 많이 생긴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조금 쉬워지면 좋을 텐데 아닌 건 아니에요. 단순히 음악이 좋다고 느끼도록, 부끄러워지지 않도록요.
해파리(HAEPAARY) – 반너머
앞으로 개인 작업에 대한 계획이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영상 작업이 재미있어요. 무용과 영상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단편 영화나 댄스 필름 같이 스토리가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음악으로 잘 풀어내려면 연습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리고 여태까지 만들어 놓은 개인 작업물을 잘 묶어서 앨범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10년 뒤에나 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차라리 무용 음악을 프로젝트 별로 묶어서 내볼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작업에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6, 7곡 정도가 있고, 무용 작업도 마찬가지고요. 그 시절 내가 하던 걸 남기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쉽지 않네요.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모두가 하는 고민 같아요. 왜냐하면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자꾸 바뀌니까요. 고치고 또 고치다보면 끝이 없는 거죠.
그리고 이건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감각이 늙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인데 긴 인생을 봤을 때 감각이 늙지 않게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돼요. 만약 감각이 늙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런 고민을 지금부터 하고 싶어요. 타산지석이 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이랑 우스갯소리로 만약 내가 하는 작업들이 도저히 봐줄 수 없다면 와서 정신 차리라고 뺨을 때려 달려고 우리 서로 때려주자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요즘 제가 가장 빠져 있는 고민이에요. 우리는 감각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감각이 늙지 않게 공연도 많이 보고 공부도 해야 해요. 그런데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이다보니 인풋과 아웃풋을 같이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하는 작업을 많이 보고 배우고 싶어요.
성혜인 | apollo_cs@naver.com
전통예술과 민속을 공부했다.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전통을 사유하는 방식을 살펴보는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