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에 잘 알고 지내는 미술가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실험음악을 접해왔고 국내 실험음악 씬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소리의 세계’에 다른 차원의 물리적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소리의 세계에서 사물은 자체적으로 주파수를 만들거나 가청영역을 벗어난 소리를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그 소리의 증폭을 체험하는 것이 환경을 인식하는 자신의 감각을 확장해주더라는 것이었다. 즉, 시각 세계에선 멈춰 있는 사물이 소리의 세계에선 전혀 다른 감각 지형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찾고자 필드 레코딩을 진행하고 있고 녹음된 소리들이 매우 ‘음악적’으로 들린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 미술가의 이야기는 몇 가지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환경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어떻게 실험적인 음악 감상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또,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청취자가 감각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문화적 함의를 드러내는가?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와 청각적 인식의 관계에 대해 현장 연구가 이루어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서구에서도 관련 연구가 등장한 것은 얼마 안됐고 ‘귀의 부활’이라는 말과 함께 청각성이 강조된 것도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로레인 플로어드의 「Distraction, noise, and ambient sounds in Tokyo」1는 ‘온쿄(音響, onkyo)’의 사례를 통해 도시의 소리를 청취자가 어떻게 (비자발적) 듣기(hearing)에서 (자발적) 청취(listening)로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를 밝힌 유의미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온쿄는 즉흥으로 연주되는 전자음악의 한 형태이자 2000년대 일본문화에 등장한 사색적인 청취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플로어드에 의하면 온쿄는 기존 음악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모호한 면이 있고, 연주자들의 동의하에 등장한 어휘도 아니며, 이 장르가 나타난 과정을 추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음악 장르로서 온쿄는 멜로디와 리듬 대신 소리의 질감과 공백, 침묵을 강화해 청취자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했고, 사용한 악기로는 색소폰, 기타, 하프와 같은 전통악기부터 실험적인 악기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2000년 즈음 도쿄에 실험성을 장려하는 ‘오프 사이트(Off Site)’ 공간이 개관하면서 온쿄가 연주될 기회는 점차 늘었다. 오프 사이트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도쿄의 요요기역 근처 아파트 단지 샛길에 위치해 공연장, 갤러리, 서점, 음반 판매를 겸했던 공간이다. 온쿄를 소비하는 의미로 “오프 사이트에서 듣는다”는 말이 유통될 정도로 온쿄와 오프 사이트는 동일시되는 경향이 컸다. 게다가 이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즉흥음악가들이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쿄는 유독 ‘일본적인’ 음악으로 인식되곤 했다.

  

Off Site의 위치를 설명한 그림 *출처: Novak, D. (2010). Playing Off Site: The Untranslation of OnkyôAsian Music41(1), 36-59.

  

오프 사이트는 방음 설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공연을 감상할 때면 도시의 소음(자동차 소리, 보행자의 발자국 소리, 대화 소리 등)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온쿄와 외부 소음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연주자가 작은 소리로 연주해야 하는 독특한 내부 규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작은 소리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소리가 극대화되어 들리는 효과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객석의 소리나 침투하는 도시의 소음은 연주에 사건성을 더했다.

플로어드는 오프 사이트에서 비의도적으로 발생한 소리들이 ‘음악’과 ‘소음’ 사이의 경계지대에서 청취자들로 하여금 청취 감각을 비약적으로 확장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와 현장에서 대화를 나눈 청취자들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공연에서 “귀에 힘을 주어야 하는” 온쿄의 실험적인 감상법이 ‘듣기(hearing)’를 ‘청취(listening)’로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미세한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게 되었다거나, ‘음악’과 연관 없는 도시의 소리를 섬세하게 듣고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와 싫어하는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다거나, 작은 소리들에 집중하며 감각이 환기되는 것을 느꼈다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오프 사이트의 청취자들이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관대하게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소음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따른 “청각적 차별”이 존재했다. 즉, 모든 소음이 오프 사이트 안으로 침투할 수 있었지만, 소음에 대한 인식은 개인마다 달라 수용할 수 있는 소리와 그럴 수 없는 소리가 유동적으로 구분됐다. 이를테면, 공연장 에어컨 소리와 외부의 자동차 소리는 괜찮지만, 공연 도중 객석에서 발생하는 인위적인 소리들(대화 소리, 음료수병 달그락거리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등)은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는 사례가 그렇다. 이처럼 온쿄는 청취자로 하여금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인식하게 하고, 자신의 청각 지형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소리에 비평적 거리를 두는 감각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더불어 음악적으로는 ‘음악과 소리’, ‘음악과 소음’ 사이의 느슨함과 객관적 분리가 어려운 경계지대가 존재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문화는 도시의 소음을 수용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 환기시킨 건 온쿄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플로어드는 온쿄를 일본 특유의 보편적인 “문화적 경향”으로 환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일본 사회는 전반적으로 ‘듣기’에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고, 자연의 소리를 감상하거나 전통음악에 소음을 수용하는 등, 소리에 대한 청각적 인식이 문화적 기저에 유통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소리에 관대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상시로 발생하는 도시의 소음들(카페와 거리의 배경음악(BGM), 확성기로 홍보하는 정치인, 남을 내려다보는 듯한 목소리 등)은 여전히 도시 거주민들의 삶을 긴장하게 만드는 근원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온쿄처럼 청취자들로 하여금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에 감각적 참여를 유도하는 국내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소리를 기반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아티스트와 실험음악 기반의 몇몇 소규모 연주 공간들이 그와 유사한 역할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상수역 근처에 위치한 ‘닻올림’은 작은 공간에 촘촘히 붙어 있는 의자나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연주를 진행하는 방식이 오프 사이트와 많은 부분 닮았다. 닻올림은 오프 사이트처럼 외부 소음의 유입을 환영하지는 않지만, 건물 자체에 울리는 소리와 방음 커튼 너머로 미세하게 흘러드는 도시 소음에 늘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공간을 외부로부터 청각적으로 최대한 분리하고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즉흥연주의 사건성을 청취자가 최대치로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곳에서는 외부 소음은 물론, 공연 시(특히 작은 소리로 연주되는 경우) 카메라 소리가 나거나 중간에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 실례가 되는 긴장된 분위기가 있다.

2017년 <문래 레조넌스(Mullae Resonance)>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닻올림픽 2017’2은 전야제에서 도시의 소음이 공연장에 침투하는 것을 이례적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시청각에서 진행된 전야제는 지붕이 뚫린 공간 구조 덕분에 연주자의 소리에 끊임없이 도시 소음이 침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주자의 소리와 침투하는 소음 사이에는 음악과 소음의 객관적 분리가 어려운 경계점이 있었고, 청취자들은 산만한 청취 환경에서 연주를 듣기 위해 나름의 고조된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반면, 닻올림픽의 본 공연이 진행된 문래예술공장은 도심 안쪽에 위치해 있어 외부 소음이 최소화된 연주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연주 중간 문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과 객석에서 발생하는 소음들은 때때로 청취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닻올림과 닻올림픽은 온쿄처럼 도시 사운드스케이프의 감각적 수용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실험음악에 대한 감상 태도로서 ‘능동적 청취’와 ‘귀 기울여 듣기’를 제안해왔고 이곳을 찾는 청취자들은 대체로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장 바깥, 도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는 이곳 청취자들에겐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며, 누군가에겐 매일 같이 수행되는 청각적 실천에 속하기도 한다. 그것을 온쿄 같은 문화적 현상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직 소소한 차원에 불과하지만, 음악적 소리와 일상의 소리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는 “변화된 청각”이 국내 사례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문화를 공유하는 청취자들 사이에 공동체적이고 “상호구성적(co-constitutive)인 청각 지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

※ 이 글은 2018년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기획: 박준우, 전대한)에 전시되었습니다.

※ 이 글에 사용한 “ ”는 별도의 표기가 없는 한 플로어드의 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승린 | halcyondrum@naver.com
미술과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스스로를 비평가보다는 연구자라 부르는 편이다. 비평과 연구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리를 탐구하는 한 측면에서 음악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동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 관련한 예술사적 자료를 모으는 데 관심이 몰려 있다.

각주

  1. Plourde, L. (2013). Distraction, Noise, and Ambient Sounds in Tokyo, In J. D. Hankins & C. S. Stevens (Eds.), Sound, Space, and Sociality in Modern Japan (pp. 71-88), London: Routledge Press.
  2. ‘닻올림 연주회’가 매월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즉흥·실험음악 공연이라면, ‘닻올림픽’은 그 단위를 키운 비정기적 실험음악 축제이다.
Show CommentsClose Commen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