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부클릿 이미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누군가가 공유한 공연 정보가 하나 흘러들어왔다. 타이틀은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였고 공연은 두 번 열릴 예정이었다. 2017년 3월 25일의 ‘피아노를 중심으로’와 4월 16일의 ‘리코더와 첼로를 중심으로’. 이 작곡가들이 서른 언저리라는 점이나 피아노, 첼로, 리코더를 선택했다는 것 때문에 이 공연을 엄청나게 기대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이 공연을 보러 가야 했던 이유는, 이들이 ‘우리가 대체 뭘 하고 있는지’를 자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불가능한) 대답을 하나로 수렴해서 내어놓는 대신 같은 질문을 공유하는 이들의 음악을 널찍이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1부 ‘피아노를 중심으로’ 공연에서는 강대명의 <네 개의 편지>, 이용범의 <Construction>과 <The First Letter>, 이상욱의 <Sonatine B/W>, <당신의 여행>, <비 오는 날 #4>, <Waltz for Rita>, 이의경의 <소년병 Suite>, 임찬희의 <한 달걀과 한 양파에 대한 두 악장으로 된 작품>, 손세민의 <Light Color>, <Grain>이 연주됐다. 부클릿에 쓰인 대로 “학습과 실험, 도피와 충동, 협업 등 여러 흔적들이 공존”하는 공연이었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어쩐지 이 공연의 기획자들에게 왜 이 공연을 만들었는지, 음악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를 묻고 싶어졌다. 1부 공연이 끝난 뒤 기획자 이상욱과 손세민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2017년 4월 5일, 충무로의 한 사진 공간에서 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플랫폼창동81에서 했던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1부 공연을 보고 두 분께 인터뷰를 요청드리게 됐습니다. 여러모로 뇌리에 많이 남아있는 공연인데요.

이상욱: 너무 험한 꼴을 보여드려가지고…
손세민: (웃음)

정말 타이틀을 보고 공연이 궁금해져서 머나먼 창동까지 갔었어요. 우선 두 분께 공연 타이틀과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작곡가 두 분은 뭘 하고, 또 어떤 음악을 만드시나요.

이상욱: 지금은 완전한 백수에요. 작년까지는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돈을 좀 모았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혼자 고민해보자’ 한 게 이제 1년이 지났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저는 끝도 없이 생각이 많은 편이라서 특히 좀 작업이 어렵고, 나만의 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테크닉이나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여전히 고민 중이죠. 틈틈이 연극이나 영화 작업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협업을 즐기는 편인데 작품에 따라 흥미나 보상이 천차만별이고, 새로운 자극이 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더욱 매너리즘에 함몰되는 순간들도 있어서 고민이기도 합니다.

세민 씨는 어떠세요? 생활을 말씀해주셔도 좋고, 음악 방향을 말씀해주셔도 좋고.

손세민: 저는 요즘 작업이 한 방향으로 좀 굳어지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악기의 가능성. 악기의 기본적인 소리 외에 확장된 소리들을 찾는 시도들은 락헨만(Helmut Lachenmann) 이후에 계속된 일인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악기가 가진 기본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소음, 즉 악기의 매커니즘과 연관성이 없거나 적은 소음은 가능한 한 쓰지 않고 음악적으로 활용 가능한 여지들이 있는 소리를 찾아 적용한다는 거예요. 이번에 작업한 첼로 곡 같은 경우는 보통 현악기에서 기대하는 테크닉이 아니라 자연 혼(horn)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진 두 악기가 교차하는 지점이 생겨요. 그럼 그걸로 소리의 이종교배 같은 걸 할 수 있는 거죠. 즉 악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활용하되 좀 더 확장된 소리를 사용하고, 다른 악기 간 소리의 교차점을 찾아서 그것을 음 소재로 삼는 게 제 주요 작업이었어요. 예전엔 이걸 모르고 직관적으로 작업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렇게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분이 이 시점에 장르와 세대를 꽤 명확하게 지칭하는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공연을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이상욱: 애초에 다수의 또래 동료들과 함께 작품발표를 하는 공연으로 기획했어요. 현실적으로 저 혼자, 혹은 저랑 세민이 곡만으로는 하나의 콘서트가 될 수 없으니 일단 그 이유가 가장 컸어요. 이렇게 하면서 인간적으로도 교류를 많이 했고, 서로의 생각을 엿보고, 같이 작업하지 못했던 사람들과도 작업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물론 이 공연에서 굳이 세대에 대한 얘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게 드러나는 공연이기도 하죠. 서로 잘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엿보고, 그게 모인 장이 많이 흥미롭기를 기대했죠.

1부 공연은 ‘피아노곡’이라는 것 외에는 스타일이 다 제각각인 데다가 작곡가들이 여태 써놨던 곡들을 조금 급히 모은 거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손세민: 일단 피아노 공연 곡들이 모이기 전까지는 어쨌든 급하게 모인 거다 보니 ‘이게 제대로 될까?’ 이런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모아서 구성해놓고 보니까 요즘 음악이랑 과거에 있었던 어법을 재활용해서 내놓은 음악 등 여러 어법이 혼재된 형식으로 배치되더라고요. 그게 좋든 나쁘든 어쨌든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이고, 작곡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는 과정이 살짝은 들어있다고 보였어요. 그래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이 되풀이되고 21세기에 다시 재현되는 과정이 카탈로그처럼 구성된 거 같아요.
이상욱: 원래 실내악곡들로 기획된 공연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마감이 늦어져서 공연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이미 공간은 잡혀 있었기 때문에 급히 대체할 수 있는 연주를 추가해보기로 했죠. 피아노곡들을 다급하게 보내달라고 해서 모았는데, 처음엔 좀 민망했지만 타이틀이랑 의도를 잡았으니 그대로 가자고 결심했어요. 문제는 그런 기획 의도나 타이틀이 변명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신선하고 의미가 없지는 않은 무대가 된 것 같아요. 뭐 여전히 민망하지만.

  

이상욱의 글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전문

  

청중들이 이 공연을 어떻게 듣길 바라셨나요.

이상욱: 이 공연에서 읽혔으면 하는 것들이라면 일단 이 사람들이 ‘왜’ 내지는 ‘어떻게’ 이 곡을 쓰게 됐을까였어요. 그리고 작품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 내지는 개성. 뭐 그런 것들을 청중들이 들을 수 있기를 바랐죠. 타이틀 같은 경우는 사실 고민이 되게 많았었는데요, 무작정 곡을 모아놓고 보니까 내세울 타이틀이 없었어요. 이전부터 저런 식의 타이틀을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저 타이틀이 구체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됐죠.

두 분은 2008년에 생긴 단체 서정적 전위 ‘숨’에서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손세민: 저는 2009년에 입학해서 그때부터 합류했어요. 저희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같이 뭘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숨’은 스터디의 성격이 강했어요.
이상욱: 목표나 도달점, 예술적 이상, 이런 건 사실 불분명했었고 사실 각자의 생각도 다 달랐을 거예요. 창작집단 내지는 예술집단이라고 할 만한 가시적인 활동이나 성과도 없었죠. 다 같이 공연을 한 건 한 번이 유일했었고 정말 세민이가 말한 것처럼 스터디 같은 모임이었죠.
손세민: 각자의 이유로 매번 모이기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매주 만나서 나름대로 비평적인 얘기를 했죠.

매주라니요. 엄청나네요.

이상욱: 한창때는 거의 매주 만났어요.
손세민: 비판도 하고, 재밌는 음악 있으면 같이 듣기도 하고, 자기 곡 들고 와서 얘기도 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영역에서 제가 관심 있는걸 다 다루지 못했었는데, 거기서 못하는 얘기를 ‘숨’에서 자유롭게 했으니 도움이 많이 됐죠.
이상욱: 오히려 ‘숨’의 많은 멤버들이 세민이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죠. 세민이의 그 풍성한 자료와 탐색력.

기존 현대음악계 내 제도나 단체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시작하셨을 것 같은데, 따로 집단을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 내지는 문제의식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요.

이상욱: 전 클래식에 빠져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현대음악까지 확장됐는데,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느낀 건 이쪽 음악을 깊게 듣는 사람이 드물다는 거였어요. 그게 좀 놀라웠고요. 그다음에 든 생각은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무슨 음악을 하고 싶어서 작곡을 전공하는 걸까. 근데 답이 없더라고요. 뭘 하고 싶다는 의욕이나 그걸 실천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음악 얘기를 할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그 ‘숨’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할 만한 사람들이었던 거죠.

세민 씨는요?

손세민: 우선 현대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방향성이 지금 너무 애매하죠. 현대음악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라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입돼서 비판을 해야 되는데, 그런 시스템이 없는 거예요. 자정 능력을 상실했죠. 성숙한 청중에 의한 비평이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제도적인 면은 그렇고, 음악적인 면에서는 어떨까요.

손세민: 제가 작곡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애초에 고전음악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고, 제나키스의 곡을 듣고 음악을 재정의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전위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데 정작 학교에 들어와서 배운 건 뻔한 음악이었어요. 물론 고전 레퍼토리를 충실히 배우고 이론을 배우는 데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근데 20세기 이후의 음악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우기가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커리큘럼 상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음렬, 총렬 맛보기 정도였어요. 그 이후의 음악은 언급이 거의 안 되죠.

한예종도 그런가요?

손세민: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상욱: 교수님들이 제3세대 동인 작곡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학교였고, 다른 곳보다도 오히려 더더욱 고유의 것, 전통적인 것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크다고 느껴져요. 선후배들까지도 그렇고요.

일단 차근차근 다양한 어법을 다 다뤄본 후에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게 내버려 두는 줄 알았어요. ‘이게 아니야 틀렸어’ 이러면서 피날레(기보 프로그램)에서 음 하나씩 지우는 느낌이 아닌 건 맞죠?

손세민: 그렇게 막 이래라저래라 터치하진 않죠. 그런 건 놔두지만, 문제는 내가 알고 싶은 범위가 아닌 거죠. 내가 알고 싶은 건 좀 더 최근 음악인데 학교에서는 그 이전 것들만 계속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현대음악이나 클래식 레퍼토리에만 골몰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따지자면 타 장르의 음악들까지 더 폭넓게 다루고 싶어서 ‘숨’을 만드신 건 줄 알고 여쭤본 건데 아니었네요. 너무 현대음악만 배우는 데서 오는 일종의 괴리감을 느끼시는 줄 알았는데.

손세민: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 반대에요.

‘숨’은 스터디같다고 했지만 그래도 ‘숨’의 일원이었던 분들이 만든 공연, 그리고 두 분이 만든 공연이 꽤 많았어요. “숨 세미 리사이틀 B Music”(2010년 7월 13일, 클럽 오뙤르),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했었던 “민중변주곡”(2013년 9월 2일, 클럽 오뙤르), “Jazz or Not?!”(2013년 9월 5일, LIG아트홀 합정), “피아노 프리즘”(2013년 9월 12일, 클럽 오뙤르), “칸토 오스티나토”(2014년 12월 12-13일, 팔레 드 서울), [제프스키 –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앨범 발매까지. 함께 참여했던 공연으로 “MTK 026”, “하우스 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 이의경)”도 있었고요. 돌아보시면 어떠세요.

이상욱: “칸토 오스티나토”나 “제프스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같은 공연들은 작품 발표 이상으로 긍지가 있었던 연주였죠. 그런 점에서 언급하고 싶어요.
손세민: 그 작품은 연주 자체만으로도 성취감이 있을 만한 곡이라.

  

이상욱 – [제프스키 –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앨범 커버 (발매: 오디오가이)

이상욱: 칸토 오스티나토도요. 저는 일단 제 작업 자체도 참 힘들고, 이런 음악 세계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기도 갈수록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우선 좋은 레퍼토리를 공유하는 게 굉장히 필요한 실천이라고 봐요. 창동에서도 8월 31일, 9월 1일에 “칸토 오스티나토” 재공연을 했었는데 관객들이 많이 안 와서 좀 아쉬웠어요. 창동이 아무래도 좀 멀어서.
손세민: 팔레 드 서울에서 했었을 때가 공연이 여러모로 괜찮았어요. 연주도 괜찮았던 걸로 기억해요.


작곡가로 살면서 제일 힘든 점이 뭘까요.

이상욱: 창작이 힘들죠…
손세민: 만드는 게 힘들죠…

이게 생계유지가 전혀 안 되는 작업이어서 힘들다든지, 작업 방향을 잡는 게 힘들다든지 등등 좀 더 디테일한 면에서는요?

손세민: 복합적이죠. 현대음악을 작곡해서 돈을 버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다른 거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죠. 쓰는 과정도 당연히 힘들고요. 그리고 그 음악에 어떤 가치부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하겠지요. 이 곡이 필요한 이유를 작곡가 자신이 찾지 못하면 만들어진 곡이 어떤 의의가 있겠어요.

어떤 의의를 찾기보다도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사람들도 꽤 있잖아요.

손세민: 그럴 수도 있죠. 그건 성향이나 기질 차이인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근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곡을 쓸 때 옛날 어법으로 쓸 거면 곡이 정말 좋고 뛰어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새로운 게 하나씩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욱 씨는 어떠세요?

이상욱: 저도 그렇죠. 근데 가령 ‘잘 쓴 곡’, ‘못 쓴 곡’ 같은 표현도 되게 이상한 것 같아요. 평가, 가치의 영역에서 곡의 의의가 판단되는 그런 것들. 저희는 워낙 평가받기 위해 곡을 쓰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작곡과 시험에 붙어야 하고, 선생님한테 안 까여야 하고, 졸업해야 하고, 입상해야 하고. 현대음악에 대한 많은 의심이나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러한 체제가 이미 너무나 공고하고, 한정된 권위에 기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 장르에서 작가성이나 예술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어요.

난처한 현실이죠. 다른 뭔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곡을 쓰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손세민: 저는 대부분 악기를 다뤄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악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들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쓰고 싶은 소리가 조금씩 생기고, 그걸 정리해뒀다가 나중에 그걸로 진행하는 편이에요.
이상욱: 그럴듯한 청각적 이미지가 떠올랐다 싶으면 쓰고 싶어지죠. 근데 가면 갈수록, 알면 알수록 그게 없더라고요. 뭐가 떠올라도 뻔한 것 같고, 이건 너무 흉내 낸 것 같고.

평소에 어떤 음악을 즐겨들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이상욱: 최근 몇 년은 그냥 집에서 유튜브 틀어놓는 게 음악감상의 거의 전부인 것 같아요. 이어폰도 안 가지고 다니고요. 특별히 가리진 않고 그때그때 눈에 띄는 걸 듣는데, 여전히 제일 많이 듣는 건 클래식인 것 같아요. 이제는 모든 음악이 배경음악화 된 시대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동감이 가요. 옛날에는 한창 말러를 끼고 산 적도 있었고, 원래 저는 낭만적이고 드라마가 강한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음악을 듣는 방식이 변하다 보니까 이제는 오히려 그런 곡들을 피하게 됐죠. 그래서 곡 작업을 할 때도 좀 더 모나지 않은, 긴 호흡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손세민: 저는 어느 정도 카테고리별로 정리해서 듣는 편이에요. 현대음악도 개인적인 카테고리로 나눠서 듣고, 일렉트로닉 음악도 많이 들어요. 정말 유니크한 아티스트들 찾으면 재밌게 듣고요. 예전엔 현대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2016년 이후로는 거의 안 들었어요. 2015년까지 작곡된 곡들은 많이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제가 찾아 듣지를 않아서요.

2016년 이후의 현대음악을 안 듣게 되신 이유는 뭔가요?

손세민: 메인스트림에서 등장하는 음악들이 비슷비슷하고 작업에 미디어가 개입되면서 음악 그 자체보다 음악 외적인 요소가 더 비대해진 것에 실망해서요. 계속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고 또 사라지고. 현대음악이라는 그 작은 씬에서조차 유행하는 스타일이 생기고 또 금방 지나가버리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좀 지치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재밌는 곡들 찾으려고 하죠. 찾다 보면 드물지만 있긴 있거든요.

두 분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몇 곡 꼽아주세요. 현대음악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요.

손세민: 파우스토 로미텔리(Fausto Romitelli)의 <Professor Bad Trip Trilogy>. 로미텔리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걸작이죠. 그리고 이고르 (Igorrr)의 [Hallelujah] 앨범이요. 이고르는 프랑스 아티스트인데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사람이고, 장르가 바로크부터 헤비메탈, 일렉트로닉의 여러 하위 장르를 아우르는 많은 스타일이 혼합되어있어요. 또 야니 크리스토(Jani Christou)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Praxis for 12>. 이 사람의 후기 작품들은 음악사에 남을 만한 곡들인데, 좀 부당하게 묻혀있는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어요. 처음에는 음렬로 곡을 쓰기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작품 내에서 연출, 즉흥성을 많이 시도해요. 전자음악의 영향도 많이 보이는데 가장 큰 특징은 연주자의 행위를 굉장히 많이 지시한다는 점일 거예요. 집단적인 광기 또는 이교도적인 의식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작업이 몇 개 있어요. 그리고 상욱이 형의 <비 오는 날>도 꼭 들어봐야 하는 작품이죠. 녹음을 언젠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레코딩이 없어서 아쉽죠. 그리고 조지 엔타일(George Antheil)의 음악 중에서도 <Ballet mécanique>의 오리지널 버전, <Sonatine for Radio><Violin Sonata>. 매력적이고 뻔뻔한 피아노 소품들, 그리고 제나키스(Iannis Xenakis)의 <Tetras>도 빼놓을 수 없죠.

이상욱: 저는 클래식에서는 야냐체크(Leoš Janáček). 제가 워낙 좋아하고,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피아노곡들과 현악 4중주. 극단적인 소박함과 비범함이 공존하는 모습이 기묘하고 매력적이에요. 현대곡 중에서는 베리오(Luciano Berio)의 <Circles>. <Sequenza>와 묶인 앨범은 거의 처음 접했던 전후 현대음악이었는데 어릴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지금도 특별한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타케미츠(Toru Takemitsu)도 아방가르드와 전통, 대중의 다방면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작곡가에요. 70년대 작품들이 특히 좋고 그중 <Waterways>와 <Autumn>을 꼽고 싶네요. 최근에는 케텔 비요른스타드(Ketil Bjørnstad)라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음악도 즐겨들었네요. 원맨밴드 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팔보채도 애정하는 분이에요. 대표곡으로는 <파란등>이 있고요. 정말 허황되고 조악한 작업들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다양한 매질을 넘나들며 철저히 주관적인 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각성을 받아요. 세민이의 작품들도 물론 늘 큰 자극을 주는데 특별히 몇 곡을 꼽기는 쉽지 않네요. 앞으로 더욱 총체적인 규모의 곡을 선보여주면 어떨까 기대도 들어요.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2부 공연 이후에 두 분이 같이 또 공연을 기획할 계획이 있으신지.

손세민: 현재로서는 없을 것 같지만, 계기가 생기면 할지도 모르죠.
이상욱: 기획이라는 것이 사실 너무나 힘들고 부족한 점도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당분간 일을 벌일 계획은 없고요. 한다면 뭔가 지속성을 담보하는 틀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죠.

두 번째 공연 이후엔 뭘 하실 예정인가요.

손세민: 일단은 기존에 공부하던걸 좀 더 시간을 들여서 할 생각이에요. 곡은 그다음에 생각해보려고요.
이상욱: 시작해놓고 방치된 곡들이 있는데 일단 이것들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추진력을 잃고 헤매게 되네요. 작업을 지속하려면 저도 새로운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상욱 Sangwook Lee https://soundcloud.com/sangwookoow
손세민 Se Min Shon https://soundcloud.com/livethisage 


신예슬 | shinyeasul@naver.com / http://shinyes.kr
음악학과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음악과 가장 가까운 사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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