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는 1997년 국내에서 처음 결성된 노이즈 듀오 ‘아스트로노이즈 (Astronoise)’의 구성원(홍철기, 최준용)이자 정치학자이다. 연주자로서 그는 음향 재생장치의 본래 기능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장치에서 소음을 산출할 수 있는 극대화된 방식들을 탐색하고 있다. ‘미학적 테러’1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을 그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 또 노이즈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부 강의와 연구원 생활을 병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일상생활에서 노이즈 음악 자주 들으시나요?(웃음)

사실 얼마 전까지 노이즈 음악 잘 안 들었어요.(웃음) 연구원으로 지내고 하면서 잘 안 들었는데 그래도 근래엔 다시 좀 듣기 시작했어요. 한참 논문 쓰는 동안에는 못 듣겠더라고요.(웃음) 사실 일할 때는 잘 못 들어요. 음악 듣는 게 약간 책 읽는 거랑 비슷해서요. 듣고 있으면 뭔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어서 일할 때는 사실 그런 음악 많이 못 듣겠어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작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요? 철기 씨 음악만 생각했을 땐 왠지 영향력이 덜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지만, 4월 16일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신 소리를 들어보면 영향을 받는 부분도 분명 있으실 것 같습니다.많이 받습니다. 감정이라는 게 대상이 확실할 때도 있고 불확실할 때도 있는데 뭐랄까,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불확실하지만 강렬한 감정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소리는 Emergency Blanket이라고 방호 담요 같은 건데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했을 때 주는 은박지로 만든 담요에요. 집에 그거를 좀 쌓아 놨었어요. 예전에 준용이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담요를 퍼포먼스에 많이 썼어요. 그걸로 뭐 할 게 없을까 해서 사놨었죠. 근데 그날 아침에 눈에 보이기에 그런 연상에서 만든 거예요. 녹음은 릴레이(RELAY)2때부터 쓰던 녹음 장비가 있어요. 스테레오 마이크하고… 그날은 바람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창문 양쪽에다가 스테레오로 두 개를 걸어 놓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나는 그런 작업이었어요.

많이 받습니다. 감정이라는 게 대상이 확실할 때도 있고 불확실할 때도 있는데 뭐랄까,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불확실하지만 강렬한 감정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소리는 Emergency Blanket이라고 방호 담요 같은 건데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했을 때 주는 은박지로 만든 담요에요. 집에 그거를 좀 쌓아 놨었어요. 예전에 준용이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담요를 퍼포먼스에 많이 썼어요. 그걸로 뭐 할 게 없을까 해서 사놨었죠. 근데 그날 아침에 눈에 보이기에 그런 연상에서 만든 거예요. 녹음은 릴레이(RELAY)3때부터 쓰던 녹음 장비가 있어요. 스테레오 마이크하고… 그날은 바람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창문 양쪽에다가 스테레오로 두 개를 걸어 놓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나는 그런 작업이었어요.

  

  

사진: 홍철기(Chulki Hong)

  

처음 노이즈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고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96년에서 97년으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활동했을 겁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때 그런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인디 록 쪽에도 소닉 유스(Sonic Youth)나 노이즈에 가까운 록 음악, 그리고 고등학교 때 데스메탈 같은 걸 많이 들었어요. 약간 노이즈에 가까운 종류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95~96년 즈음에 노이즈 음악에 대해서 좀 알게 됐어요. 메르츠보우(Merzbow)나 그런 음악들을 접했는데, 당시에 메르츠보우도 미국에 있는 데스메탈 레이블에서 음반이 나오고 했었어요. 그런 음반 들어보면서 아 이런 음악이 있구나, 한번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때 준용이(최준용)가 녹음기하고 장비가 좀 있었어요. 준용이를 94~95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로-파이, 포크 록 같은 집에서 하는 음악들 중에 이상한 음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거에 영향을 받고 우리도 직접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 당시에 활동하시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이텔하고 나우누리입니다. 거기는 인디음악이나 얼터너티브 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곳이에요. 류한길은 하이텔에 있었고 저하고 준용이는 나우누리에 있었어요. 나우누리는 메탈동이 있었는데 다들 아마 그렇게 시작했을 겁니다. 메탈 안에서 출발해서 밖으로 나가는 식으로요. 저는 그때 모던 록도 듣고 노이즈도 듣고 이것저것 듣는 편이었어요. 당시에 『Alternative Press』나 『CMJ』 같은 미국 잡지들 보면 조금씩 그런 내용들이 있었어요. 인디 사이키델릭 록,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 아니면 레드 크레욜라(Red Krayola)같은 70년대 아방가르드 록에 대한 내용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좀 얻을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별로 안 좋아했지만 친했던 사람 중에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아트 록 좋아하는 사람들도 노이즈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쪽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프리 재즈나 이런 쪽에 대해서도 잘 알았어요.

노이즈 뮤지션들의 온/오프라인에서의 비공식적인 교류들, 혹은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네트워크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인터넷 기사나 음반을 통해 아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여기는 인적 네트워크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노이즈 음악 씬이 있다는 얘길 들은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훨씬 많아졌어요. 2000년대 중반 전 까지는 별로 없었는데 그 이후로는 굉장히 많아졌어요.

일본 씬의 영향이 있었을까요?

기본적으로 일본은 실험음악이라는 게 거의 미국하고 유럽하고 동시에 생겼다고 봐요. 우리나라나 중국은 통칭 실험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게 대부분 2000년대 중반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음악이 가능했던 사회적 변화를 일본도 확실히 겪기는 겪었어요. 예를 들어 온쿄(Onkyo)4나 이런 것도 그렇고, 사치코 엠(Sachiko M)씨의 음반이 처음 나왔을 때가 99년인데, 당연히 일본에 있던 실험음악의 역사도 있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확실하게 관찰되는 전지구적인 변화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2000년대에 그런 음악이 나오는 거는 전반적으로 비슷하기는 한데 그래도 일본은 좀 예외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음…어디까지 노이즈 음악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자파노이즈(Japanoise)만 놓고 보면 그건 아예 일본에서 먼저 생긴 거죠. 노이즈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가들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노이즈 음악’이라는 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고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에서 강하게 생겼죠.

조금 전 “어디까지 노이즈 음악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이즈 음악’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례를 하나둘 나열하다 보면 노이즈 음악의 범주가 생각보다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 ‘록이 아닌 음악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처럼 노이즈 음악이나 실험음악도 그런 조류에 설 가능성이 있을까요?

음, 노이즈 음악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노이즈가 아닌 게 없다고 봐요. 그건 저에게 기본 출발점입니다. 노이즈가 아닌 게 없어요. 대중음악도 사실 노이즈의 성질을 갖고 있고요. 마사미 아키타(메르츠보우)가 했던 인터뷰에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 자기는 일본 대중문화가 너무 노이지 해서 자기의 노이즈로 다 침묵시켰으면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예전 인터뷰였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노이즈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라고 할까, 이런 것의 변화가 있다고 느끼는데, 여기까지는 음악이고 여기까지는 음악이 아니라고 하는 구별이 굉장히 많이 약해졌어요. 한국이. 그러니까 박다함이나 최태현 씨(쾅프로그램)나 자립음악가들, 이런 사람들을 만나봤을 때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그거에요. 권용만 씨(쾅프로그램)나 이런 세대하고 얘기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나요. 여기까지는 음악이고 여기부터는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그 관념이 굉장히 약해요. 잘 받아들여요.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노이즈 음악도 잘 받아들여요. 그리고 관객들이 느끼는 것도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전에는 노이즈를 하는 사람만 노이즈를 들었어요. 음악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청취자는 사실 거의 없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정규 음악교육을 받으신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이즈 음악은 ‘비전문가의 음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런 점이 이 음악을 하시는 데 더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정규 교육을 해주는 기관에서 이런 음악을 접해볼 수 없다는 점이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음악에 대한 태도나 그런 문제도 있고, 그런 종류의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데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음악을 접할 기회가 사실은 거의 드물었죠. 지금은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예전에 제가 뭘 시작하려고 했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인디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친구들은 많이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들하고도 사실 그 부분에서 많이 부딪혔어요. 친구들은 음악과 음악이 아닌 선을 긋고 나가려는 게 있어서… 특히 90년대에는 더 그랬어요. 2000년 초중반까지도 그랬고요. 이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같이 해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그러한 문화적 구별이 좀 강했어요. 그렇게 상상해보면 제도권 안에서는 더 보수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노이즈 음악은 정해진 악기와 연주법이 없고 연주자의 아이디어와 악기가 내는 물리적 소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이즈 음악에서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류한길 씨, 준용이, 그리고 저 이렇게 같이 작업을 많이 해서 비슷한 점들이 좀 있어요. 초반에 불가사리5나 릴레이를 하기 전부터 공통으로 계속 느꼈던 건, 소음이라는 게 우리가 음악으로 생각하는 것 밖에 있는 ‘나머지’잖아요. 나머지라고 했을 때 그 나머지를 만들어내는 물건들에 뭐가 있나, 일단 거기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그리고 초기에 메르츠보우의 인터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음향 기록 재생 장치들이 있잖아요. 요즘은 라디오를 많이 안 들으니까 이런 비유도 잘 못 쓰는데 라디오 스테이션 넘어가는 와중에 화이트 노이즈가 나오잖아요. 텔레비전 채널 돌리면 그 사이에 노이즈 나오고. 음악도 기타를 치고 페달을 쓰는데 이런 기계들이 사실은 기본적으로 노이즈를 낸다고 느꼈어요. 류한길 씨는 MD플레이어로 작업도 하고 신디사이저도 쓰고 했었는데, 이런 기기들이 디폴트 값으로 가지고 있는 게 노이즈였어요. 그렇게 생각한 게 저희의 공통점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장치가 원래 가지고 있는 노이즈 속성을 잘 살릴 수 있을까…지금 나와 있는 디지털 기기들 말고 아날로그 기기들이 원래 내는 소리가 노이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기계들을 원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그런 의도된 기능 말고 노이즈를 내는 기능으로서 극대화 시켜볼 수 없을까. 그걸로 만드는 음악, 그런 소리들에 맞는 음악형식이란 게 뭘까, 혹은 거기에 맞는 음악적 제스처는 뭘까 이런 고민을 계속했었어요. 이를테면 기타는 손가락으로 줄을 잡고 피킹을 하잖아요. 이런 것 말고 어떤 종류의 제스처가 가능해질까 거기에 대한 고민을 했었죠. 그래서 진상태(노이즈 뮤지션) 씨도 알게 됐어요. 류한길 씨가 자기 아는 사람 중에 형광등으로 음악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웃음) 오 그럼 당연히 불러와야지.(웃음) 형광등 타다닥! 하는 소리로 음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때 진상태 씨를 알게 됐어요. 형광등 소리. 비트가 있고 선율이 있고 이런 음악이 아니라 원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퀄리티를 특히 노이즈로서 여러 가지 의미의 퀄리티를 살리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당시 관심사가 그런 거였어요.

지금 나와 있는 디지털 기기들 말고 아날로그 기기들이 원래 내는 소리가 노이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기계들을 원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그런 의도된 기능 말고 노이즈를 내는 기능으로서 극대화 시켜볼 수 없을까. 그걸로 만드는 음악, 그런 소리들에 맞는 음악형식이란 게 뭘까, 혹은 거기에 맞는 음악적 제스처는 뭘까 이런 고민을 계속했었어요. 이를테면 기타는 손가락으로 줄을 잡고 피킹을 하잖아요. 이런 것 말고 어떤 종류의 제스처가 가능해질까 거기에 대한 고민을 했었죠. 그래서 진상태(노이즈 뮤지션) 씨도 알게 됐어요. 류한길 씨가 자기 아는 사람 중에 형광등으로 음악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웃음) 오 그럼 당연히 불러와야지.(웃음) 형광등 타다닥! 하는 소리로 음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때 진상태 씨를 알게 됐어요. 형광등 소리. 비트가 있고 선율이 있고 이런 음악이 아니라 원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퀄리티를 특히 노이즈로서 여러 가지 의미의 퀄리티를 살리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당시 관심사가 그런 거였어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노이즈 퍼포먼스는 연주자의 제스처도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불길한 저음’과 솔로 연주에서의 제스처가 시각적으로나 사운드 전달 면에 있어서 각각 다른 에너지로 느껴졌었습니다.

불길한 저음에서 연주했을 때 저는 듣지 않았어요. 듣지 않을 때는 훨씬 제스처가 커집니다. 근데 제가 들어야하는 경우에는 제스처가 클 수가 없어요. 아마 불길한 저음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도 집중해서 들으러 오지는 않을 거예요. 전체적인 물리적 에너지가 중요하거든요. 준용이는 이 두 가지를 섞는 경향이고요. 얼마나 집중해서 듣느냐에 따라 제스처의 크기가 달라져요. 그런 환경(연주자와 청취자가 듣는 소리가 같은 환경)을 좋아해요. 모니터가 따로 있는 환경은 별로 안 좋아해요.

  

  

  

연주 환경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공연장, 전시장, 거리, 오래된 건물 등 다양한 공간에서 연주 경험이 있으십니다. 공간이나 장소가 작업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그때 다릅니다. 옥바라지에서 했던 ‘서울의 비명’같은 경우는 다 끝나갈 때쯤, 그러니까 다들 소리를 안 내기 시작했을 때 깨진 심벌이 하나 있어가지고 벽을 치고 다녔는데 공간에서 그런 요소들을 찾으려고 해요. 이거는 준용이한테 영향을 받은 거기도 한데 환경의 소리를 듣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 거죠. 두들기면서 다니는 방법이 있고 한 장소에 가만히 앉아서 듣는 방법이 있고요.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공간에 맞는 걸 하려고 해요. 그런데 일반 공연장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잘 안 되고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는 돼요. 일반 공연장에서는 원래 있는 사운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편이고요.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자파노이즈는 일본이라는 국가 특유의 정체성이 많은 부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자파노이즈 사운드 자체에서 ‘일본적인 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국내 노이즈 음악도 한국이라는 장소와 환경에 속해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 노이즈 음악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요?

각자의 장소성은 중요하다고 봐요. 음악을 하는 환경에서는 한국이 별로 안 좋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지 않았으면 이런 음악 안 했을 거예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환경은 오랫동안 적대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좋아졌는데 문화적인 환경은 어쨌든 한국에 있음으로서 생긴 정체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죠.

일본의 경우는 자파노이즈가 미국 하위문화에 영향을 많이 줬는데 거기에 라디오가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실제 지역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방송을 해줍니다. 제가 해외 공연 갔을 때 그쪽에 있는 기획자가 얘기를 해서 라디오에 나가서 인터뷰를 한 적도 있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준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방송을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90년대 말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메르츠보우를 한번 틀었었어요. 그때 딱 틀었더니 쿠와아악~ 크아아악~!! 이런 음악이 나오니까 바로 배철수 씨가 볼륨을 줄이고 거기다 멘트를 넣더라고요. ‘이런 음악도 있네요.’ 왜냐면 방송 사고인 줄 알까봐…(웃음) 녹음된 방송이 일요일에 나가니까 일요일에 근무하는 엔지니어가 방송 사고인 줄 알고 꺼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웃음)

노이즈 음악은 종종 급진적이고 저항적인 코드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소음의 태생적인 특성이나 음악사를 생각해보면 배타적 성향이 없다고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 저항의 의미는 문화적으로 부여된 이차적 의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소음과 음악이 얼마나 구분이 되느냐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을 거 같아요. 그게(배타적 성향이) 강할 때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미학적으로 특히요. 그렇게 해서 사실은 작업을 계속 해왔던 거고요. 근데 점점 작업을 하면 할수록 꼭 노이즈를 (저항과) 연관시킬 필요는 없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사실 그 둘을 연관시키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어요. 특히나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더 힘들 것 같고요. 초기 단계에 노이즈 음악을 시작했을 땐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기 위해 분명히 필요했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을 실제로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동료 예술가분들과 연대를 통해 정치적 현장에서도 퍼포먼스를 하셨습니다. 노이즈 음악으로 연대의 현장에 들어가실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하시나요?

음… 사실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가사에 정치적인 내용이 있는 걸 부르는 것도 아니고, 가서 한 번의 공연으로 도움이 된다고 하면 힘을 보태려고는 하는데 뭐랄까, 이 부분은 다른 음악가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가서 공연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저 스스로도 그렇고 거기에 큰 의미부여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노이즈 음악 자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기도 하고요. 공적인 곳에서도 공연을 하지만 사실은 사적인 방식이겠죠. 세월호 관련해서 만들어 올렸던 것도 정치적 사안들과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음악과 활동들을 정치적 메시지에 분명히 연결시킬 수 있는 어떤 이벤트를 기획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현장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는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질문입니다. 연주하실 때 머릿속으로 그리는 청취자와의 관계나 구도가 있으신가요?

연주할 때는 제가 청취자에요. 이 음악을 만드는 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이 듣는 것과 제가 듣는 게 어디에 앉았다는 위치의 차이뿐이지 실제로 큰 차이는 없다고 봐요. 저는 모니터 스피커를 피하려고 해요.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연주자가 자기가 내는 소리를 따로 들어요. 록 밴드 기타리스트 앞에 비스듬하게 놓여 있는 모니터가 그런 사례에요. 그건 퍼포머만 듣죠. 당연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거고요. 그치만 노이즈 음악에선 방해가 되죠. 왜냐하면 제가 내는 소리가 저쪽 편에 가서 부딪혀서 돌아올 때 어떻게 들리는지를 모니터 때문에 못 들어요. 어쩔 수 없이 모니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여전히 잘 적응은 되지 않아요.

철기 씨가 생각하는 ‘능동적 청취자’란 어떤 것일까요?

귀에 소리가 들어오는 건 모두 다 똑같이 들어오죠. 소리는 사람마다 똑같이 들어오는데 그거를 분해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종의 해킹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리학적인 그런 것이라기보단 사회문화적으로도 분해해볼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봤을 때는 능동적인 청취자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능동적이라는 건 거기서부터 뭔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봐요. 그 점에 대해서는 앨빈 루시에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노이즈를 매체라고 말하듯이 소리가 하나의 매체잖아요. 매체라고 할 때 소리는 기본적으로 에코(echo)잖아요. 다른 사람이 낸 소리가 울려서 오는 거지 소리 자체가 소리를 내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소리가 어디를 통해서 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소리를 들을 때 장소와 환경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능동적인 청취자겠죠. 그 소리를 통해 지시되는 어떤 사건이나 어떤 행위를 듣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능동적인 청취자라고 생각해요. 그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는 여러 가지 환경과 맥락, 이런 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능동적인 청취자죠.

그래서 제게 능동적 청취는 특히 노이즈 음악과 관련해서는 ‘어려운 청취’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노이즈 음악은 사실 그 음악 자체에서 들을 건 없어요. 한국에서는 그런 종류의 환경이 잘 마련이 안 되어서 그런데 대부분 노이즈 음악을 들을 때 경험이란 건 소리를 못 듣는 것 아닌가요?(웃음) 노이즈 음악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복잡한 텍스처를 들을 수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노이즈 음악은 다른 걸 다 못 듣게 만들잖아요. 어떤 경우는 내가 듣고 있는 이 행위 자체가 실패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능동적인 청취는 좀 어폐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제 생각에는 다른 말이 좀 필요한 거 같아요.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무엇이냐, 혹은 내가 듣고 있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의 것인지에 대해 의식적인 청취를 말하겠죠. 그 점에서 노이즈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저한테는 중요한 경험이죠.

홍철기는 오래전부터 노이즈 음악의 담론 형성에 기여해왔고 여러 차례 소리에 대한 이론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젊은 연주자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왔다. 2015년부터 국제 사운드아트 창작워크숍 ‘문래공진(Mullae Resonance)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으며, 이 행사는 지난 달 11월 7번째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근에는 닻올림픽 2017’에도 참여해 가와구치 타카히로(KAWAGUCHI Takahiro), 최준용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는 이승린의 학위 논문 『1990년대 이후 국내 노이즈 음악의 위상과 질적 변화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2016년 9월 22일에 진행되었다. 앞으로 헤테로포니 웹페이지에는 당시 진행되었던 아티스트와 청취자 인터뷰가 당사자의 허락하에 한 달에 1~2편씩 게재될 예정이다.


이승린 | halcyondrum@naver.com
소리문화연구자. ‘소리에는 위계가 없다’는 믿음을 모토로 듣는 행위와 관련된 문화적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로 참여관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 언어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창작 현장에 주목한다.

각주

  1. 2012년 홍철기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한 “소음·침묵·즉흥의 소리 혹은 음악”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존 케이지의 급진적 사고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소리(카페, 상점 등)로 전도됐음을 설명하면서 노이즈 음악이 이 모든 대중문화의 소리를 덮는 ‘미학적 테러’로서 작동한 바 있음을 설명했다.
  2. ‘릴레이(RELAY)’는 노이즈 뮤지션 류한길을 주축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되었던 전자즉흥음악회의 이름이다.
  3. ‘릴레이(RELAY)’는 노이즈 뮤지션 류한길을 주축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되었던 전자즉흥음악회의 이름이다.
  4. ‘온쿄(音響, おんきょう)’는 작은 범주에서는 전자즉흥음악의 한 형태로 설명된다. 하지만 온쿄가 ‘소리’나 ‘음향’을 의미하는 일본어라는 점과 그 구성요소로 사운드스케이프와 앰비언트 사운드를 포함한다는 점, 그리고 2000년대 일본문화에 등장한 청취의 한 방식으로도 불렸다는 점에서 의미 경계가 모호하고 느슨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5. ‘불가사리’는 국내 프리 재즈 아티스트 강태환(색소폰 연주자)의 콘서트에 모였던 사람들이 만든 실험음악연주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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